하지만 올해 봄, 김 씨의 아버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봄옷을 사주려던 지난 3월, 평소 마른 체형이던 딸의 배가 유난히 나온 것을 보고 병원에 데려가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만삭에 가까워 성폭행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정확한 임신 주수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김 씨는 4월 말에 제왕절개로 출산했습니다.
# 피해자 부친
"아무리 내 딸이지만, 제가 남자다 보니까. 아이 배를 마음대로 까볼 수도 없고. 생리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다 보니까. 그 부분이 제일 미안합니다. 엄마라도 있었으면 좀 일찍 알았을까 싶어서 지금 애한테도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죠."
60대 임원이 20대 지적장애 딸 성폭행해 출산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가해자'를 찾기 위해 동네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평소 집과 교회, 회사만 오가던 딸의 동선을 따라 주변 탐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씨가 한 차례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지목했고, DNA 불일치 결과가 나오며 수사 상황에도 혼선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추궁했고, 그제야 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세탁업체 임원인 60대 이 모 씨였으며, 이 씨가 "가족에게 알리며 가만두지 않겠다", "감옥에 간다"는 식으로 지적 장애 딸에게 협박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김 씨의 아이와 이 씨 DNA가 일치한다는 검사 결과가 나온 직후, 이 씨는 피해자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사실을 시인한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연말 중절 수술 시도 정황…휴대전화도 바꿔치기"
기막힌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60대 이 씨가 김 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지난해 12월, 딸의 연락이 갑자기 두절돼 아버지가 실종신고까지 한 날이었습니다. 가해자 이 씨는 이날 김 씨를 한 산부인과에 데려가 본인을 삼촌이라 속인 뒤 낙태를 시도했으나, 병원 측에서 김 씨 보호자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돌려보낸 겁니다. 이날 가해자 이 씨는 김 씨 휴대전화도 자신의 가족이 쓰던 중고폰으로 바꿨습니다. 그 간의 통화 기록과 대화 내역도 모두 지워졌습니다.
인면수심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있던 피해자 김 씨에게 이 씨는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는가 하면, 하혈 중인 피해자의 음부 사진 전송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드러난 증거들로 모두 경찰에 제출됐습니다 . 김 씨가 아이를 출산 한지 한 달 보름 남짓 지난 시점, 가해자 이 씨는 김 씨를 또다시 차에 태워 자신의 지인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했습니다. 이 씨가 김 씨를 유인해 차량에 태우는 장면은 고스란히 CCTV에 담겼습니다. 김 씨가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가해자 이 씨는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취지로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로 이 씨를 입건하고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김환섭 변호사는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가해자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집행 등 신속한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피해자와 일상 생활을 잠시나마 함께한 사람이라면, 가해자 측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오랜 시간 증거를 인멸하고 현재는 가족과 연락까지 끊긴 상황에서 추가 증거 확보와 압수물 분석, 피의자 신병 확보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습니다.
사회적 나이 7세인 피해자 김 씨. 해바라기센터 조사에서 사건 당시 자신의 마음을 서툴지만 일관되게 털어놨습니다. 가해자의 행동을 자신의 의사에 따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해하거나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진술 조서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납니다.
'장애인 표준 사업장'…가해자 아들이 '대표', 가해자 본인은 '전무'
김 씨가 일했던 이 사업장은 장애인 직원 10여 명이 고용된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지난 2024년에 고용노동부 산하 장애인고용공단이 인증한 곳입니다. 표준사업장으로 지정되면 설립 자금과 각종 세제 혜택을 지원받습니다. 최초 3년간 법인세, 소득세 100%, 그 다음 2년간 50% 감면해주는 식입니다. 물품 거래 등 판로도 정부가 약속합니다. 이 업체 대표는 가해자 전무의 아들입니다. 대표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면서 경찰과 노동청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인천 중부고용지청은 해당 사업장에 대해 특별 근로감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과태료 처분 등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표준 사업장을 관리 감독하는 장애인 고용 공단은 '인권 침해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및 전 직원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사업장 대표도, 전언이지만 가해자 본인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실제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태어난 지 90일 된 아이를 돌보기 위해 피해자 아버지는 이달 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20년 후면 제가 80세가 됩니다. 그때까지 제가 살아 있다는 보장도 못하겠고요. 아이 키우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부친의 말입니다.
이제 막 속싸개를 풀고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이는 한없이 예뻤지만, 취재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죄 없는 아이와 피해자 가족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시간이 너무 길고 무거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딸과 손녀가 있는 가해자 60대 이 씨의 입장을 끝내 직접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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