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
"등기가 도착했습니다."
세종에 사는 30대 직장인 A 씨는 지난 10일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법원 사무관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A 씨가 범죄에 연루됐다며 관련 등기를 자택에서 받을지, 전자로 열람할지 고르라고 했습니다.
A 씨는 당황스러웠지만, 부모님께 걱정 끼치기 싫다는 생각에 전자 열람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남성이 보낸 링크를 누르자 사건 번호와 A 씨 이름이 적힌 검찰 서류가 떴습니다.
서류에는 A 씨 명의로 '시크릿 계좌'가 몰래 개설돼 범죄에 이용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곧이어 서울중앙지검 검사라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와 이런 사실을 알리며 A 씨에게 중고 공기계 휴대전화를 사 유심(USIM)을 옮겨 끼우고, 원격제어 앱을 설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위축된 A 씨는 그의 말에 따랐습니다.
A 씨가 자산 규모를 정확히 답하지 못하자 검사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다그치고는 "당일 약식기소를 받지 못하면 구치소에 끌려간다"고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겁먹은 A 씨에게 검사는 "시간을 끌어보겠다"며 인근 호텔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호텔에 들어간 A 씨는 일주일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첫날부터 방 밖으로 나간 16일까지 조사를 빌미로 자신의 상태를 한 시간마다 보고해야 했고, 사유서와 반성문까지 강요당했습니다.
조직원들이 매시간 추궁하는 탓에 사기라는 것을 의심할 틈이 없었다는 게 A 씨 얘기입니다.
A 씨는 부모님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주변에 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포감이 커질 때쯤 금감원 과장이라는 사람이 A 씨에게 "돈을 안전한 계좌로 옮겨야한다"며 입금을 유도했고, 그의 말에 A 씨는 전 재산 1억 3천590만 원을 열 차례에 나눠 보냈습니다.
금감원 과장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습니다.
A 씨는 "은행원 가운데 공범을 잡아야 하니, 대출받아라. 빚은 수사가 끝나면 원상복구된다"는 조직원들 거짓말에 대출도 8천700만 원이나 받았습니다.
다행히 은행의 계좌정지 조치로 돈이 빠져나가진 않았지만, 조직원들은 이상 거래를 의심한 은행이 확인 전화를 걸거나 계좌를 막으면 "그것도 공범의 방해"라고 A 씨를 세뇌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간의 감금 끝에 불안해진 A 씨는 형사사법포털(KICS) 앱을 확인했고 자신이 받은 검찰 서류 속 사건번호가 거짓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원 사무관과 검사, 금감원 과장이라던 이들 모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A 씨는 피해자를 숙박업소로 유인해 스스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신종 '셀프 감금' 수법에 당한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이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입니다.
A 씨는 지난 18일 피해 사실을 세종남부경찰서에 신고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는 "수사받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검사라며 구치소 얘기를 꺼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며 "특별히 순진하거나 금융지식이 부족한 사람만 당하는 게 아니라 가장 취약한 순간을 파고들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최근 A 씨와 같은 '셀프 감금' 보이스피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실제 지난해 11월 대검찰청 사칭 조직에 속아 열흘 넘게 감금된 40대가 6억 2천만 원어치 골드바를 넘겼고, 지난 2월엔 대구의 원룸에 일주일간 갇힌 40대가 18억 원을 송금하려다 지인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피해를 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지인과 연락을 끊고 혼자 특정 장소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으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