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4일 캐나다 CPSP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캐나다 퀴몰트 해군기지를 방문하는 도산안창호함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했다고 정부가 나서 홍보하는 일 드물지만 국산무기 수출 계약 맺으면 청와대가 보도자료 내고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나라 살림 피게 하려면 정부는 돈 잘 벌어들이는 업종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할 텐데 청와대의 대통령 특사는 거의 방산수출 전용으로 활동합니다.
그래본들 K-방산의 연간 수출액 최대 기록은 170억 달러입니다.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의 한 달 매출액도 안 될 판인데 정치권력의 K-방산 사랑은 이렇게 뜨겁습니다. 언론과 유튜버는 국산무기 하나하나가 절대 강자인양 찬양 일색의 기사와 영상을 쏟아냅니다. 그런 열기에 힘입어 방산업체들의 주가는 폭등했습니다. K-방산의 거품입니다.
미 해군 훈련기, 호주 호위함, 폴란드 잠수함 등 최근 몇 차례 해외 대형 무기 도입 사업에서 K-방산은 연속으로 실패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희망을 키운 캐나다 초계잠수함 도입 사업 CPSP에서 K-방산은 또 고배를 마셨습니다. 실망이 큽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K-방산의 지난 몇 년과 현재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 때 방산비리에 휩쓸려 추락했던 K-방산은 활로를 뚫기 위해 수출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이집트 K9 자주포, UAE 천궁-Ⅱ 수출 계약으로 기력 찾았고, 러우 전쟁으로 안보 패닉에 빠진 폴란드를 천재일우처럼 만났습니다. 폴란드가 지갑을 열면서 짧은 호황 누렸습니다. 러우 전쟁, 이란 전쟁, 그리고 트럼프의 몽니에 유럽과 일본의 방산 공룡들이 깨어났습니다. K-방산이 계속 호시절을 향유할 수 있을까요.
방산비리로 지탄받을 때를 K-방산의 1차 위기라고 한다면, 폴란드 외에 딱히 수출 국가를 못 찾던 중 CPSP에서 참패한 현재를 K-방산의 2차 위기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방사청 등 정부기관들도 CPSP 실패 이후 눈에 띄게 위축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K-방산의 전진을 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혁신을 도모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장애물들 무척 많습니다.
세월 낚는 정부 주도 연구개발
K-방산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 미사일과 드론 시장에서 기회의 창이 열릴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새롭게 무기 개발하려면 도끼 자루 썩는 세월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소요 제기, 소요 결정, 소요 검증, 선행연구,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국방중기계획 수립, 사업타당성조사, 예산 편성 및 요구 등 사전 절차로만 5년은 훌쩍 지나갑니다.
본격적인 연구개발 단계인 탐색개발, 체계개발, 시제개발에도 5년 이상 걸립니다. 업체끼리, 또는 업체와 정부 사이에 작은 다툼이라도 벌어지면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일정은 연장됩니다. 소소한 무기 하나 개발하는 데 가장 짧게 잡아도 10년입니다. 강산이 변할 시간입니다. 그동안 해외 무기 시장은 저만큼 달아납니다. 이렇게 K-방산의 연구개발은 속도전에서 접고 들어가는 실정입니다.
단칼에 절차를 없앨 수는 없을까. 역시 어렵습니다. 각 절차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일자리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방사청 1천6백 명, 국방기술품질원 8백 명, 국방기술진흥연구소 4백 명, 한국국방연구원 KIDA 5백 명, 국방과학연구소 ADD 3천8백 명 등 7천명이 연구개발 절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방 소재 대학 방산 관련 학과의 A 교수는 "연구개발 절차 관련 공무원이 7천명이란 것은 규제가 7천개라는 뜻"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방 관련 한 유력 연구기관은 "CPSP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확실한 K-방산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지금도 옥상옥 위에 옥상옥이 덧씌워져 K-방산을 짓누르는 상황입니다. CPSP는 컨트롤타워가 짱짱한 가운데 실패했습니다.
업체들의 '정부 바라기 일편단심'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LIGD&A,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같은 대형 방산업체가 왜 제 돈 들여 제 손으로 마음껏 개발하지 않고 오로지 정부 돈 걸린 사업에 사활을 걸까. 왜 전투기 엔진을 개발하겠다면서 정부한테 돈 달라고 손 벌릴까. '내돈 내산' 무기 개발은 안 되는 걸까. 회삿돈 수백 조 들여 공장 짓고 제품 개발하는 반도체 산업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방산업체들이 방사청과 ADD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형국이기 때문에 K-방산의 세월을 낚는 연구개발 방정식은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사청, ADD 바라보지 않고 업체 주도로 무기 개발하려는 의지가 희박해서 러우 전쟁, 이란 전쟁에서 부각된 초정밀 미사일과 드론의 속전속결 민간 개발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연구개발은 ADD 주도로, 수출은 정부와 업체가 공동으로 하다 보니 업체가 독자적으로 하는 분야는 양산 하나뿐입니다. ADD 없이 독립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정부와 수출입은행의 도움을 부차적인 수단 마냥 가볍게 여기는 방산업체가 나타날 만도 한데 사실 상상이 잘 안 됩니다. 민간 업체 본연의 강점이라는 역동성, 유연성, 창발성, 돌파력 등이 K-방산에서는 잘 안 보입니다. 한국방산학회의 한 임원은 "업체의 눈과 귀가 방사청, ADD의 그것보다 민감하기 때문에 업체가 미래 사업을 선제적으로 포착해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포스트 K-방산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품 키우는 국뽕과 정신승리
한국 경제에서 방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안 될 것입니다. 방산수출의 안보적 기여도 희박합니다. 업체 이윤 키우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방산수출을 좋아합니다. 국회 국방위의 한 전문위원은 "방산수출은 국뽕을 차오르게 하고, 이는 곧 지지율과 표이기 때문에 권력은 방산수출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업체들의 정부 의존도 권력의 방산수출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또 진보, 보수 양측의 지지를 받는 방산수출은 막무가내로 찬양해도 무탈합니다. 이른바 까방권을 확보한 영역입니다. 그래서 유튜버들은 "방산수출 유력"을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국뽕의 뒷받침으로 조회수는 수십 만을 가볍게 찍습니다.
언론들도 앞다퉈 "CPSP 승기 잡았다"식의 무책임한 기사를 남발했습니다. CPSP 실패에도 "독일 잠수함 건조 계획이 꼬여 한국 조선업에 오히려 기회가 생겼다", "미 해군 군함 1천 6백조 시장이 기다린다"며 부추깁니다. 중국 민간 드론이 시원하게 들여다보는 한국 조선소에서 미 해군 군함 짓기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공적 책무 망각하고 객관적 취재도 없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조회수를 좇는 보도와 유튜브 영상, 그리고 정치적 응원 덕인지 방산업체 주가는 과하게 올랐습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96만 원이고, LIGD&A는 74만 원, 현대로템은 17만 원, KAI는 14만 원입니다. 최고점에 비해 다소 떨어진 가격이지만 폴란드 잭팟 이전과 비교하면 많게는 20배 뛰었습니다. 중견 증권사의 임원급 애널리스트는 "매출, 수주 잔량과 비교해 방산업체 주가가 많이 올랐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난립하는 전시회와 포럼
현실은 딴판입니다. K-방산 인기 좋다고 방산 전시회 신설에 혈안입니다. 이순신 방위산업전(YIDEX)과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국제 지상군 방위산업전(KADEX) 등 아류 방산 전시회들이 그것입니다. 이덱스는 문재인 정부 때 졸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DX코리아와 카덱스는 원래 하나였는데 윤석열 정부 때 주최측인 육군협회와 시행사측의 다툼으로 분리됐습니다. 분리된 이후에도 주도권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국방부가 중재해서 통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DX코리아, 카덱스, 이덱스 모두 '불필요악'이라고 방산업체들은 입을 모읍니다. 방산업체의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뜻입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모 임원은 "K-방산 인기에 기생하려고 태어난 DX코리아, 카덱스, 이덱스는 모두 폐지하는 것이 K-방산에 도움이 되는 길이지만 정부, 업계 어디에서도 감히 말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아류 방산 전시회처럼 별 도움 안 되면서 방산업체의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또 있습니다. 언론사들이 주최하는 각종 방산 포럼입니다. 방산업체 후원 받아서 몇 가지 방산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행사입니다. 국방부와 방사청, 방산업체 고위직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가합니다. 방사청 고위 관계자는 "돈벌이 위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방산 포럼에 가서 언론사 대표와 인사하고 인사이트도 없는 토론을 듣는 척 해야 한다", "국방부와 업체들도 그저 의무적으로 자리를 채워주는 것으로 안다"고 푸념했습니다.
공기업 KAI의 뒷걸음질
정부는 수출입은행 지분 26%을 빌미로 KAI를 지배합니다. 정치권력은 KAI에 비전문가 낙하산 사장을 내리꽂고, 낙하산 사장은 기업 대표보다는 정부 관료처럼 KAI를 다루기 일쑤입니다. KAI 성장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방산 정책에 호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KF-21 예산 빨리 많이 받아서 생산 늘리는 대신, 정부의 예산 부족 걱정하며 KF-21 양산 속도 줄이는 데 매진합니다. KF-21 수출도 정부의 고루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임직원들도 낙하산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연결된 인물이고, 그래서 회사 사정 상관없이 월급은 따박따박 갖다주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직원들의 복지, 생존보다 낙하산 코드 맞추기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AI의 한 중견 직원은 "직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돌연사해도 노조는 외부 입단속을 하는 등 사측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지적했습니다.
K-방산의 발목을 잡는 것이 세월 낚는 연구개발, 방산업체들의 정부 의존, 국뽕과 정신승리, 난립한 전시회와 포럼, KAI 민영화 지연뿐이겠습니까. 방산업체 직원들 모아서 토론 시키면 이보다 몇 배 많은 장애물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우선순위 정해 하나씩 허무는 K-방산 리더십의 등장을 기대해 봅니다.
혁신적 K-방산 리더십은 포스트 K-방산을 추구할 터. 장애물 걷어내는 혁신에 성공한다면 포스트 K-방산은 업체가 주도해 현대전에 딱 맞아 떨어지는 첨단무기를 속도감 있게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는 양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자란 기술과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진취적으로 외국 업체와 손잡아 고루한 순혈주의에서 탈피하는 모습도 나타날 것입니다. 잇단 수출 수주 실패로 K-방산이 긴장하고 있는 지금이 혁신의 적기입니다. 혁신에 나서지 않으면 K-방산은 방산비리 위기 때처럼 침체기 겪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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