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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SP의 실패가 나토의 벽?…어느새 현실된 'K-방산의 위기' [취재파일]

국제 방산전시회에 선보인 TKMS의 212CD급 모형
지난 5월 28일, 대형 방산업체 임원들과 만났습니다. 기자는 그때 세가지 방산 이슈에 대해 예언 같은 관측을 했습니다. ① 한화오션이 KDDX 사업에서 이긴다. ② K-방산의 대표격인 모 방산기업의 주가가 특정 가격 이하로 떨어진다. ③ 독일 TKMS가 캐나다 초계잠수함 도입 사업 CPSP에서 이긴다. 나름 근거와 논리가 있는 주장이었지만 방산업체 임원들은 ①번에만 수긍하고 ②, ③번은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난 3일 금요일 오후, 기자는 CPSP 우선협상대상자의 향배를 세군데에서 확인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로부터 독일 TKMS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양해의 언질이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화의 고위직들, 방사청 핵심 관계자들에게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모두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떤 이는 한화오션의 승리를 낙관하는 금요일 오후의 기사들을 보내며 기자의 취재를 반박했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팀 단톡방에 한화오션의 석패 사실을 공유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6일, 캐나다 정부의 CPSP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하루 앞두고 한화오션의 주가가 15% 넘게 뛰다가 8%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주식시장은 동물적 감각으로 호재와 악재를 넘겨짚는다는데 왜 이렇게 거꾸로 움직이는지 의아했습니다. CPSP의 핑크빛 전망을 담은 기사와 유튜브 아이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한화오션은 마지막 순간까지 "50대 50의 팽팽한 국면"이라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이런 말들을 할까"라는 생각에 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7일 새벽, 캐나다 정부는 CPSP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TKMS가 선정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해외 단일 사업의 승부임에도 이례적으로 이용철 방사청장은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브리핑을 자처했습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입니다. 이 청장 발언의 제1 주제는 "나토 안보 동맹을 뛰어넘지 못했다"입니다. 패인을 밖에서 찾았습니다. 전문가와 언론들도 마찬가지로 외부의 패인, 나토의 벽을 지목했습니다. CPSP 패배에 내부적 요인은 없을까요. 그리고 K-방산의 다른 분야는 사정이 괜찮을까요.
 

나토의 벽? 성능과 후속군수지원은?

지난 5월 24일 캐나다 CPSP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캐나다 퀴몰트 해군기지를 방문하는 도산안창호함
한화오션이 CPSP에 제안한 잠수함은 도산안창호급입니다. 비핵 재래식 잠수함 중에서 중량급인 3천톤급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도 쏩니다. 먼 바다에서 산재한 적들을 쫓기 보다는, 동서남해에서 북한 잠수함에 맞서며 북한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용도로 개발됐습니다.

독일 TKMS가 CPSP에 제안한 잠수함은 212CD급입니다. 잠대공미사일, 어뢰대응어뢰로 무장해 대잠헬기와 적 어뢰를 막을 수 있습니다. 2천5백톤급으로 도산안창호급보다 작고, 다이아몬드형 선체 디자인을 적용해 소나 피탐률을 극도로 줄인 스텔스 잠수함입니다.

캐나다 CPSP가 원하는 잠수함은 사업명 가운데의 PS(Patrol Submarine)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계잠수함입니다. 초계잠수함의 생명은 소음과 피탐 면적이 적은 은밀성, 그리고 주변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정찰능력입니다. 캐나다 해군 소요의 대범주부터 독일 212CD급에 부합합니다. CPSP의 배점 중 20%을 차지한 성능 부문에서 독일 TKMS의 우세는 따놓은 당상이었습니다.

CPSP의 배점 중 50%를 차지하는 후속군수지원은 한화오션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부문이었습니다. TKMS는 독일, 노르웨이, 캐나다 등 3국이 부품이 똑같은 동일 기종을 운용한다는 절대적 배경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3국 중 어디에 들러도 정비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TKMS는 여기에 더해 캐나다 동부와 서부에 각각 창정비 및 지원 센터의 설치를 공약했습니다. 한화오션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캐나다가 도산안창호급을 공동 운용하는 메리트"는 TKMS의 그것에 비해 약소할 뿐입니다.

한국 정부와 한화오션은 212CD급이 실물이 없는 페이퍼 잠수함이라는 점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지금까지 잠수함 1천7백대를 건조한 잠수함 초강대국입니다. 잠수함 건조 물량이 쌓여 있어서 인도 시기가 조금 늦춰질지언정 TKMS 최신형 스텔스 잠수함의 적기 탄생은 기정사실임에도 한국 정부와 한화오션은 스스로 위로하며 현실을 회피했습니다. 나토의 벽이 높았다는 것은 구차한 핑계에 가깝습니다.
 

 다른 K-방산은 평안한가

지난 2월 열린 사우디 방산 전시회의 K-방산 부스들. K-방산업체들은 수출 MOU 체결도 한 건 못했다.
캐나다 CPSP와 같은 K-방산 실패 사례는 처음이 아닙니다. 미 해군 훈련기 사업에 KAI는 참여하지도 못했습니다. 호주 호위함 사업,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서도 쓴잔을 마셨습니다. 지상 무기도 최근 들어 별다른 낭보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잭팍 후속 수출을 제외하면 K-방산의 실적은 전체적으로 저조한 편입니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사우디, UAE의 지갑만 바라보는 형국입니다.

사실, 폴란드 잭팟은 우연과 우연이 만난 희귀 사례입니다. 폴란드는 러우전쟁으로 안보 불안감에 몸서리쳤지만 그동안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방산 생태계를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K-방산은 천수답 같은 내수시장의 한계와 방산비리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수출 역량을 키워왔습니다. 안보 불안에도 유럽에서 무기 못 구하는 폴란드와 수출 체력 왕성한 K-방산의 운명적 만남이 폴란드 잭팟입니다.

앞으로는 폴란드 잭팟과 같은 상황을 다시 만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며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도 자주국방에 뛰어들었습니다. 무기 생산 라인을 일깨워 무기의 가성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일본도 무기 수출을 선언했습니다. K-방산의 주력인 전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경공격기, 요격시스템 등 전통의 재래식무기는 슬슬 깨어나고 있는 유럽과 일본 방산의 손쉬운 먹잇감입니다. 무기는 국제정치적 상품이고, 유럽과 일본은 국제정치의 강자이기 때문에 K-방산의 미래 경쟁력 확보는 점점 더 어려운 과업이 될 것입니다.
 

뒤처지는 K-방산의 속도…포스트 K-방산의 길은?

KAI 직원들이 KF-21 시제기를 조립하고 있다.
K-방산은 무기 하나 개발하려면 10년 이상 걸립니다. 군의 소요제기에서 시작해 사업검증, 선행연구, 사업타당성 조사 등 페이퍼 워크 형식의 사전 절차만 5년 이상 잡아먹습니다. 이어서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하는 탐색개발, 체계개발, 시제개발 하느라 금방 4~5년 흘러갑니다. 정부의 눈으로 무기 선택하고 정부의 손으로 개발하는 방식입니다. 눈과 귀가 빠른 방산업체가 본격적으로 주도권을 쥐는 것은 개발 이후의 양산 단계부터입니다.

정부의 연구개발, 업체의 생산, 정부와 업체의 공동 수출 마케팅이라는 K-방산 방정식에 방산업체들은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투자해서 연구개발하는 도전적 방산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반면에 안보적으로 절박감을 느끼는 유럽과 일본의 업체들은 K-방산이 넘보기 어려운 자체적 자본과 기술을 토대로 속도전에 뛰어들었습니다. 현대 전장에 적합한 최신, 최첨단의 무기 분야에서 K-방산은 유럽과 일본 방산에 밀리기 십상입니다.

기자가 지난 5월 28일 관측했던 세가지 중에 ①, ③번은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K-방산의 대표격인 모 방산기업의 주가가 특정 가격 이하로 떨어진다는 ②번 역시 거의 사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②번은 K-방산의 위기가 왔다는 뜻이고, 거품 붕괴의 전조입니다. "K-방산의 담대한 도전"같은 구호만으로는 CPSP의 재연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한국 방산의 원로급 한 인사는 "K-방산의 체질과 경쟁력에 한계가 왔다", "K-방산의 작동 방식을 획기적으로 뒤집는 '포스트 K-방산'의 길을 모색할 때가 됐다"고 기자에게 조언했습니다.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는 포스트 K-방산의 도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런 만큼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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