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방선거를 '중앙 정치의 대리전'으로 부릅니다. 그 정치적 의미,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대 담론이 선거판을 휩쓸 때면 정작 우리가 사는 동네의 이야기는 그 기세에 눌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투박한 정치적 구호 대신 '데이터'라는 정밀한 렌즈를 통해 지방선거를 들여다 보려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우리 동네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표로 확인해 보고, 동네 단위 방대한 선거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 동네 별 세세한 표심은 물론 그 이면에 숨겨진 과학적 흐름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지방선거의 주무대는 '중앙'이 아닌 아닌, '우리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구름 위의 전쟁'이 아닌 우리 일상의 결을 결정하는 '촘촘한 민주주의'의 장. 그 무게를 유권자 분들과 함께 고민하는 '지방선거의 무게' 연속보도, 오늘은 그 열번째 순서입니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 중 하나가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라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합니다. 자치단체장 선거보다 보궐선거에 더 큰 시선이 쏠리는 장면도 역설적입니다.
한 지역 의석 다툼을 넘어, 향후 전국 정치 구도와 여론의 흐름을 읽을 상징적 전장인 까닭입니다. 부산 북구갑을 10년 시간선으로 끌어올려 다시 봅니다.
21대 총선과 22대 총선 두 번 모두 전재수 의원이 박빙으로 이긴 이 지역에서, 전재수라는 인물 변수가 빠지면 표심은 어디로 향할까요.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흐름을 정밀하게 추적해 봤습니다.
38년 10번 총선…'전재수 빼고는 모두 보수'
부산 북구갑의 38년간 '정치' 성적표부터 펼쳐 봅니다. 선거구 신설 이후 38년간 치러진 10번의 총선에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나선 세 번을 빼면 모두 보수가 이긴 곳입니다.
문정수·정형근·박민식 세 보수 후보가 28년을 지켰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전 후보가 처음 자리를 가져온 뒤 21대(2020)·22대(2024)까지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보가 자리 잡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전 후보가 치른 두 번의 선거 모두 박빙이었습니다.
21대에는 박민식 후보를 2.01%p 차로, 22대에는 서병수 전 부산시장을 5.64%p 차로 따돌렸을 뿐입니다. 여기까지면 '점점 진보가 자리 잡는 험지'로 볼 수도 있지만, 같은 기간 같은 동네의 다른 선거를 함께 펼치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같은 10년, 8번의 큰 선거…인물 빠진 자리는 보수가 다 가져갔다
하지만 진보가 이긴 4번은 결이 다릅니다. 7회 지선 오거돈 시장 당선과 19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진보 지지세가 전국적으로 높던 시기여서, 부산 북구갑 민심만 떼어 읽기 어렵습니다.
이 둘을 빼면 진보가 1위를 한 건 전 후보가 출마한 세 번의 총선뿐입니다. 21대 총선은 8개 동만 합산하면 박 후보가 300표 앞섰지만 표차는 1%p 안쪽으로 가장 박빙이었습니다. 반대로 전 후보가 나오지 않은 5번(부산시장 3·대선 2)에서 북구갑이 자체적으로 진보를 1위로 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재수 효과' 정량화…평균 13.9%p, 최대 18.4%p
결과는 명확합니다. 8개 동 모두에서 전재수 출마 총선의 민주당 후보가 진보 쪽으로 평균 11.0%p에서 최대 18.4%p까지 표를 더 가져갔고, 전체 평균은 13.9%p였습니다.
본래 보수 표밭인 북구갑에서 전재수라는 이름 하나가 모든 동의 표를 진보로 끌어당긴 셈입니다. 21대 2.01%p, 22대 5.64%p의 박빙 승리는 그 인물 효과가 보수 우세 지형을 가까스로 넘긴 결과였습니다.
"재수 행님 뒤를 잇겠다" 하정우 전략의 속내
하 후보는 전 후보가 우위를 만든 만덕2·3동과 구포1·2·3동을 잇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전략은 지난 28일 첫 TV 토론회에서 도마에 올랐습니다. 한동훈 후보는 '하 후보 공보물에 정작 하 후보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만 보인다'는 취지로 공세를 폈죠. 하지만 하 후보로선 데이터가 가리키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습니다. 진보가 기댈 자산은 결국 전재수라는 이름이 8개 동에 남긴 +13.9%p이고, 하 후보의 과제는 그 유산이 인물과 함께 사라지기 전에 자신에게 옮겨 붙이는 것입니다.
8개 동을 한 표에, 동네별로 본 8번 선거 표심
각 칸은 그 동·그 선거에서 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 후보의 득표 차이(%p)로, 양수면 진보, 음수면 보수, 0에 가까울수록 박빙입니다. 오른쪽 '8번 평균'은 10년 평균 성향을, '진보 1위'는 8번 중 진보가 1위였던 횟수를 뜻합니다.
가로(동네)로 한 줄씩 읽으면 동의 성향이, 세로(선거)로 한 줄씩 읽으면 시기별 분위기가 보입니다. 동별로 보면, 만덕2동만 8번 평균이 진보 쪽으로 3.4%p여서 유일한 진보 우세 동입니다(8번 중 6번 진보 1위). 가장 보수 색이 짙은 곳은 덕천1동으로 보수 쪽 평균 8.4%p, 진보 1위는 2번뿐입니다. 같은 선거구 안 동별 격차가 11.8%p에 달합니다. 평균 순으로 줄 세우면 만덕(만덕2·3동), 구포(구포3·2·1동), 덕천(덕천2·3·1동) 순으로 보수 색이 짙어집니다. 신축 단지의 만덕, 옛 중심부 구포, 구도심 덕천이라는 동네 성격과 맞아 떨어집니다.
선거별로 보면, 진보 평균이 가장 컸던 건 2018년 7회 지선(16.3%p)·2016년 20대 총선(9.9%p)·2017년 19대 대선(6.4%p)으로, 모두 박근혜 탄핵 전후 진보 지지세가 높던 시기입니다. 보수 평균이 가장 컸던 건 2022년 8회 지선(34.8%p)·같은 해 20대 대선(19.4%p)·2014년 6회 지선(4.8%p)으로,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8회 지선에선 8개 동 모두 부산 전체의 보수 쏠림을 따랐습니다. 평균 2%p 안쪽의 박빙은 21대·22대 총선 두 번뿐이고, 모두 전 후보가 출마한 총선이었습니다.
부산 광역과 비교하면? '험지'의 거리는 어디서 만들어졌나
그 6%p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보면 패턴이 분명해집니다. 광역 선거(부산시장 3·대선 2)에서는 8개 동 평균 보수 7.3%p, 부산 평균 7.0%p로 차이가 0.3%p에 불과합니다.
반면 전 후보가 출마한 총선 3번에선 8개 동이 진보 쪽 평균 3.8%p인데 부산 전체는 보수 쪽 12.4%p로, 차이가 16.2%p에 달합니다. 동별로도 부산 평균보다 20대 총선 20.8%p, 21대 10.3%p, 22대 17.3%p 더 진보 쪽이었습니다. 결국 8개 동을 부산보다 6%p 진보 쪽에 세운 거리의 거의 전부가 '전재수 효과'였습니다.
'전재수 개인의 표밭'을 22대 총선이 증명했다
결과는, 전 후보가 핵심 표밭이 빠진 8개 동만으로도 서병수 후보(46.67%)를 52.31%, 5.64%p 차로 이겼습니다. 반면 만덕1동이 옮겨간 북구을에선 같은 당 정명희 후보가 국민의힘 박성훈 후보에게 졌습니다. 만덕1동의 진보 표심이 당의 것이 아니라 전재수 개인이었음이 입증된 셈입니다.
그 전 후보가 의원직을 사임하고 부산시장에 도전합니다. 25년간 같은 지역에서 4번 맞붙어 정확히 2:2를 만든 라이벌 박민식 후보도 22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을 진성준 후보에게 낙선한 뒤 8년 만에 본진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보궐은 3파전이죠.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국민의힘 박민식, 무소속 한동훈으로 확정됐습니다. 데이터의 질문은 분명합니다. '전재수가 빠진 부산 북구갑'은 어떤 동네일까요.
캐스팅보트는 만덕2동?
만덕2동은 흔히 '신만덕'으로 불립니다. 80·90·2000년대 세 차례 택지조성을 거친 인구 2만 5천 명대 만덕 중심지입니다. 한국부동산원 K-apt의 9개 단지를 보면 1979년 만덕대진·1988년 동원맨션·1989년 만덕삼성 같은 노후 단지에, 2015년 백양 디 이스트(30개 동 3,160세대)·2022년 백양산 베스티움에코프레(593세대) 같은 신축이 섞여 있습니다.
70~90년대부터 살아온 노년층과 2010년대 이후 새 아파트로 들어온 청·중년층이 함께 사는 곳,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유는 결국 누가 사느냐에 있습니다. 전국 정치 바람이 두 번 거꾸로 뒤집히는 사이에도 늘 부산보다 한 발 진보 쪽이었다는 점이, 단순히 표가 많다는 것 이상으로 만덕2동을 캐스팅보트로 만듭니다.
'만덕2동' 정조준 한 한동훈
동선의 무게중심이 만덕 일대라는 뜻입니다. 후발·무소속인 한 후보가 보수 결집지 덕천1동에서 박 후보와 정면 대결하면 표가 양분됩니다. 그래서 결집지가 아니라 부동층이 가장 두텁고 표가 가장 많은 만덕2동을 골랐습니다.
확정 선거인 수도 만덕2동이 21,895명으로 가장 많고, 지난 선거 유효표도 가장 많았으며(13,709표, 선거구의 19%), 평균 연령도 가장 어립니다(46.5세). 박 후보가 보수 본진 결집을, 하 후보가 토박이 표심을 노리며 전통 본진을 두고 싸우는 사이, 한 후보는 양쪽 어디에도 쏠리지 않은 부동층 한가운데로 들어간 것입니다.
보수 본진 덕천1동, 박민식의 25년 '우군'
박민식 후보는 구포 토박이입니다. 행정구역상 덕천동은 구포동과 별개지만 노년층은 일대를 통틀어 '구포'라 부릅니다. 1963년 부산 편입 전까지 덕천동이 동래군 구포읍 덕천리였고, 구포시장 상권이 덕천역으로 확장된 결과입니다(2010년 조사에선 덕천교차로 일대가 서면·남포동을 제친 부산 시내 유동인구 1위였습니다). 박 후보 캠프가 5월 10일 개소식에서 줄곧 강조한 키워드도 "진짜 북구 사람" 하나였습니다. 구포에서 6남매를 홀로 키운 91세 노모가 함께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박형준 부산시장 등 지도부가 총출동했습니다.
이 메시지가 꽂히는 자리를 데이터가 가리킵니다. 박 후보가 출마한 최근 두 번의 총선(20·21대)에서 덕천1동은 8개 동 가운데 그에게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준 동이었습니다. 두 후보 득표만 따지면 평균 50.9%로 8개 동 중 유일하게 과반(다음은 덕천3동 50.6%)이었습니다. 전재수가 두 번 다 이긴 선거에서도 덕천1동만큼은 박민식의 자리였던 셈입니다.
덕천1동은 흔들 곳이 아니라 결집할 곳입니다. 다만 셈법이 단순치 않습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직전(5월 28일 전)까지 공표된 조사들에서 한 후보 지지세가 하 후보를 앞서는 흐름이 나타났고, 이를 끌어올린 동력을 '보수 결집'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만큼 박 후보로선 보수 표심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고, 그 중심에 덕천1동이 있습니다. 과거 자신에게 표를 몰아준 보수 표밭의 이탈을 박 후보가 막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6월 3일 밤, 가장 먼저 봐야 할 두 동네
지난 10년·8번의 선거에서 표심을 가른 것은 정당의 바람이 아니라 그 동네에 누가 사느냐였습니다. 만덕2동의 백양 디 이스트 3,160세대, 베스티움에코프레 593세대, 그리고 곧 들어올 새 입주민들이 북구갑의 다음 2년을 결정합니다. 6월 3일 밤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두 동네는 만덕2동과 덕천1동 아닐까요?
25년 전에는 '어느 정당이냐'가 중요했다면, 이제 유권자들은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방향이 표심을 움직이는 선거, 그것이야말로 지방선거가 가진 진짜 의미가 아닐까요?
(작가 : 김효진·박정선, 인턴 : 박근호·송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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