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어린이날에 국어학원은 쉬지만 영어학원은 수업을 해요. 학원에 안 간다고 해도 어차피 집에서 영어단어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다를 게 없어요." (초6 권 모(12) 양)
"어린이날이어도 수학학원은 가야 해요. 당연히 놀고 싶긴 한데, 안 가면 안 나간 만큼 다음 수업이나 다다음 수업에서 진도를 더 많이 나가야 해서 학원 안 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크게 부럽지는 않아요."(초5 김 모(11) 군)
오는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지난달 말 목동 학원가 초등학생들의 말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노래해야 하는 '어린이날'에도 어린이들이 학원에 갑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1975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 대상 유명 학원들은 '어린이날'에도 대체로 수업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목동 A 초중고 수학학원은 "5월 연휴가 있지만 어린이날이라도 전 학령 정상 수업"이라고 밝혔습니다.
대치 B 초중고 수학학원도 '어린이날' 수업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해당 학년 수업이 있는 날이라면 휴무 없이 다 한다"고 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초등생 대상으로 특별 강의(특강)를 진행한다고 홍보하거나 평소처럼 수업한다고 공지한 학원들도 많습니다.
"황금연휴를 '실력 연휴'로 바꾸는 마법"(거제 A 수학학원), "학습 지속성을 유지하고 학부모님의 휴식 시간을 확보해 드립니다"(B 화상 영어학원), "수업 결손 없이 꾸준한 두뇌 자극이 이어질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광명 C 영어학원) 등의 광고 문구를 함께 기재했습니다.
지난달 19일 네이버의 한 학원 강사 커뮤니티에서는 "어린이날, 노동절에도 수업하시나요? 저희는 할 것 같은데…다들 어떠신지요?", "저희 학원은 정상 운영. 중딩은 안 오는데 초등 애들은 다 와야 해요", "초등인데 다 일합니다" 등의 글이 오갔습니다.
또 네이버의 한 대치 맘카페에는 "연휴 기간에 초등 수학 특강 열리는 학원 있을까요?" 같은 질문이 올라와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어린이날'에도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초4 딸을 둔 윤 모(45) 씨는 "학원이 횟수제로 운영되는 경우 휴일이 많으면 보충 강의가 열릴 수도 있다"며 "나중에 보충 강의가 잡힐 바에는 어린이날이어도 그냥 학원 가는 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초5 아들을 둔 이 모(41) 씨도 "공부는 연속성이 중요하기도 하고, 최상위권 반이 아닌 이상 학원에 가도 어린이날이니까 수업을 평소처럼 강도 높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오히려 학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중1 아들을 둔 김 모(42) 씨는 "아이가 작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저학년은 아니어도 고학년은 어린이날이어도 학원에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학원이 정한 일정이기 때문에 빠지기도 그렇고 학부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긴 하다"고 밝혔습니다.
초6 딸을 둔 강 모(47) 씨는 "어린이날에 학원에 가니 당연히 미안하고 안쓰럽긴 하지만 학원에서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놀면 된다는 생각"이라며 "학원 가는 거 싫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서 기특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UNICEF) 아동연구조사기관인 이노첸티연구소의 '예측 불가능한 세계, 아동의 건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종합적인 복지 실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유럽연합(EU) 회원국 36개국 중 27위에 그쳤습니다.
아동의 신체·마음건강, 학업 및 사회적 역량 등 아동 웰빙 수치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로, 이는 코로나 이전인 2020년의 21위보다 하락한 수치입니다.
특히 한국 아동의 신체 건강은 40개국 중 28위로 하위권, 정신 건강은 36개국 중 34위의 최하위권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2024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의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45.3점으로 나왔습니다.
초중고교생 65.1%가 학교 수업을 제외한 공부에 권장 수준을 넘겨 시간을 쏟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빼고 학원이나 학습지, 온라인 강의 등을 통해 공부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은 2시간 17분, 초등학교 고학년은 2시간 47분이었습니다.
중학생은 3시간 12분, 고등학생은 3시간 33분으로 모두 권장시간을 넘었습니다.
고2 딸을 둔 최 모(49) 씨는 "초등학생들이 어린이날인데 놀지도 못하고 그렇게 공부한다는 걸 들으면 너무 안쓰럽다"며 "다른 날도 아니고 어린이날은 아이들을 위한 날이니까 실컷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날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는 "아이들 학습에 대한 부모의 욕구 때문에 초등학생임에도 어린이날에 학원에 가는 경우도 생기지만, 한국의 아동행복지수가 낮은 편에 속하는 만큼 어린이날에 아이들이 공부하기보다 쉬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는 건 아주 당연한 얘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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