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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란 시위 현장에 '태극기' 출현? 따져 보니

이란 반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경제난과 정부 무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했고, 정부는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연설을 통해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이 숨졌다"고 말했습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희생자 숫자를 공개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인권단체는 희생자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메네이는 이번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미국의 음모'로 규정하고, "미국의 목표는 이란을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지배 아래 놓으려는 것"이라며 반미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이런 가운데, 국내 SNS에서는 이란 시위 중 태극기가 나왔다는 말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실제 영상을 보면, 이란과 이스라엘 국기를 든 시위대 앞으로 태극기를 몸으로 감싸고 있는 사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좋아요'가 3천200개가 넘었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현장에 나타난 태극기, 과연 사실일까요.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일단 SNS에 공유된 태극기 영상을 구글 검색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2024년 10월에 올라간 미국의 한 SNS 영상이 확인됐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국내에 퍼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영상이었습니다. 역시 태극기가 보였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미국 뉴욕에서 유대인과 이란 사람들이 함께 집회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달렸습니다.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2025년 말부터 시작됐으니까, 시기상으로 맞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국내 퍼지는 이란 태극기 영상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SBS 사실은 팀은 영상의 출처를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봤습니다. 영상 속 집회가 언제, 어디서, 왜 열렸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영상에 나오는 장소를 구글 맵스를 통해 찾아봤습니다. 붉은색 건물에 'H10'이라고 적힌 파란색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 구글을 통해 검색했더니, 뉴욕이 아니라 베를린 시내에 있는 'H10 쿠담호텔'로 확인됐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미국의 한 SNS 사용자가 올린 영상도 사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집회는 언제, 왜 열린 걸까요. 2024년 10월 이전 베를린에서 촬영된 영상일 텐데, 이걸 확인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SBS 사실은 팀은 단서를 하나하나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이 지역의 지도를 확인했습니다. 영상 촬영 장소는 베를린의 유명한 건물인 카이저빌헬름 교회 근처였습니다. 베를린 서쪽 시내입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또 영상에 나타난 이란 국기가 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국기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쫓겨난 팔레비 왕조 집권기 이란 국기였다는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현재 이란 공식 국기에는 이슬람 교리 문양이 들어가지만, 팔레비 왕조 시절의 이란 국기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와 태양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관련 뉴스를 찾아보니,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국기는 '저항의 상징'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팔레비 왕조 역시 폭압적인 통치로 혁명의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하지만, 종교적으로 엄격한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달리 '국가 현대화'를 목표로 세속주의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세속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란 국민 입장에서는, 히잡을 강요하는 식의 지금의 하메네이 체제에 대한 반감을, 당시 국기를 지렛대 삼아 저항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어쨌든, 영상 속 단서는 카이저빌헬름 교회 근처에서 열린 집회라는 점, 이 집회에서 이란 옛 국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공존했다는 점, 그리고 캐주얼 한 옷을 입은 집회 참가자들의 인상착의 정도였습니다.

이 3가지 단서로 구글 검색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독일의 한 일간지 홈페이지에서 당시 집회 영상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태극기 허위정보 팩트체크

SNS 영상이 찍힌 장소와 아예 똑같지는 않지만, 집회가 카이저빌헬름 교회 근처에서 열렸고, 팔레비 왕조 당시 이란 국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함께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집회 선두에 선 참가자들이 같았습니다. 흰색 반팔 티셔츠와 검은색 추리닝 바지, 손에 든 마이크 등 동일 인물로 추정됩니다. 이 청년은 집회 선두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는데,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두 영상 속 선두에 선 다른 인물도 인상착의가 같았습니다.

즉,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해당 영상은 2023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 하마스 집회였습니다. 그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전포고 없이 대규모 침공을 강행하자, 유럽 곳곳에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는데, 이런 성격의 시위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베를린에서 열린 집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시내 서쪽 거리를 행진했다.
Bei einer Kundgebung in Berlin haben mehrere hundert Menschen ihre Solidarität mit Israel bekundet. Tanzend und singend zogen sie durch die City West.
- 독일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2023년 11월 5일 자.

사실 오늘 검증한 허위 정보는 그 자체로 유해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희가 이렇게 세세히 팩트체크를 한 이유는, 허위 정보가 SNS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SNS 상의 글과 사진, 영상 등은 허위 정보의 밑천이 되고, 그 허위 정보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위 정보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다른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며 재활용되며 또 다른 허위 정보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허위 정보의 '승수 효과'는 커집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 희생자 급증

2023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집회 영상이 1년 뒤 미국 뉴욕의 반 하마스 시위 영상으로, 2026년 1월에는 국내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 영상으로 소비된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이 정보가 사회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정보였다면, 해악의 승수 효과 역시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허위 정보의 생산력과 영향력도 극적으로 증폭되는 시대, 허위 정보의 재활용과 재가공이 일상화된 지금, 많은 고민과 숙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자료 조사 : 작가 김효진, 인턴 황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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