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외국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이 돌아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 과정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저희 취재진이 입수한 지난 10년 치 대외비 문서를 분석한 결과, 경매에 나온 문화유산에 정부가 개입할 때마다 가격이 치솟는 이상한 흐름이 확인됐습니다.
노유진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서울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입니다.
지난 2020년,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미국 경매에서 낙찰받아 들여왔습니다.
당시 예상가는 우리 돈 2, 3천만 원 수준이었지만, 재단은 18배인 약 4억 원을 써내 낙찰받았습니다.
정부가 빠지면 어떨까.
바로 다음 해, 같은 경매에 출처가 확실해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앙부일구'가 나왔는데, 이번엔 불과 6천여만 원, 예상가에 근접해 낙찰됐습니다.
[류호철 교수/안양대학교 문화유산 교육 전공 : 국가가 나서서 이 유산을 매입하려고 하면 그들(소유자)은 아, 원산국인 대한민국이 이 문화유산을 반드시 매입하고자 하는구나. 가격을 좀 높여도 되겠구나(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정부가 경매에서 사들인 문화유산을 전수 분석했더니 평균적으로 예상가의 7배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문화재를 사 오는 데 쓴 돈만 130여억 원에 달합니다.
'강노초상'은 31배, 덕온공주 '동제인장'은 9.5배 팔폭병풍 '호렵도'는 7.5배나 비쌌습니다.
통상 크리스티 같은 대형 경매사 낙찰가가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유독 우리 정부만 바가지를 쓴 셈입니다.
재단 측은 환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합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관계자 : 재단이 가격을 올린다는 건 사실과 좀 다르고, 재단이 꼭 필요한 유물에 대해서는 환수할 수밖에 없고.]
하지만 속내를 보면 환수 건수와 홍보 실적을 기관 성과로 평가하면서 고가 매입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이거는 (예산) 낭비 수준이 아니에요. 공공 기금을 목표를 위해서 쓴 거죠. 그거는 뭐냐면 저는 실적 채우기(라고 봅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김종태, 인턴 : 황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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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렇게 정부가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이는 문제를 넘어 더 근본적인 의문이 남습니다. 불법으로 약탈당한 문화재를 왜 돈을 주고 되찾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이어서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조선 시대 왕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
일본 경매에 약 2천만 원에 나왔는데, 재단이 소장자를 직접 접촉해 25배인 5억여 원을 주고 사 왔습니다.
재단이 관심을 보이자 소장자가 가격을 한껏 올린 겁니다.
[경매 참여자 : 우리가 만약에 (사서) 갖다줘도 1억 안에 가져올 건데 몇 배를 준 거잖아요. 재단에서 들어오는 게 무조건 최고 값 끊으니까(상인들이) 네고(협상)도 장난을 하는 거야.]
재단은 "극적인 매입"이라고 홍보했지만, 일제 강점기 약탈 가능성이 높은 문화재를 거액에 사 오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약탈당한 다른 나라들은 접근법이 다릅니다.
지난 2009년 프랑스 경매에 약탈 문화재인 청동상이 나오자, 중국은 민관이 협력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항의 성명을, 민간단체는 반환 소송을 냈고, 수집상은 낙찰받은 뒤 대금 지급을 거부해 경매를 무산시켰습니다.
[리우양/중국 변호사 (2009년) : 우리는 유물 반환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국제적 논란으로 번지자 소유자는 결국 유물을 기증했고, 이후 중국은 '약탈품 경매 매입 금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42년째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 조각 반환을 요구 중인 그리스 역시, 매입 계획은 없습니다.
[김경민 박사/문화재 약탈 및 반환 연구 :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고 모든 걸 다 사 올 순 없잖아요. 외교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계속 얘기를 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정부가 직접 지갑을 열어 가격을 올리기보다, 외교적 노력과 민관 협력을 통해 기증이나 기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환수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영상편집 : 이소영, 디자인 : 방민주, VJ : 김준호, 인턴 : 황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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