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아파트 화재
지난 26일(현지시간) 홍콩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최소 수백 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참사가 나면서 국내 고층 건축물은 화재 대비책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관심입니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와 소방청 등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층수가 3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120m 이상인 고층 건축물은 모두 4천756개동입니다.
이 가운데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미터 이상인 초고층 건축물은 작년 기준 126개, 오가는 연인원이 많은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은 모두 349개입니다.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은 11층 이상이거나 수용인원이 5천 명 이상으로, 지하 부분이 지하역사나 지하도상가와 연결된 건축물을 말합니다.
대부분 지역 랜드마크로 꼽을 수 있는 건물들입니다.
초고층·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2020년 408개에서 5년 새 67개가 늘었습니다.
초고층·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은 관련 특별법에 따라 국가, 지방자치단체에 국민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필요한 시책 마련 등 의무 규정을 둡니다.
한번 불이 날 경우 외부 소방력으로 화재 진압이 어려워 피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건축물 관리 주체도 재난·안전관리 시책에 협조하도록 규정합니다.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고자 피난 안전구역 등 소방 대피시설을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50층 이상 건축물은 지상층으로부터 최대 30개 층마다 1개 이상의 피난 안전구역을 설치해야 합니다.
화재나 지진 상황에서 건물 외부로 대피할 수 없는 경우 주민은 피난 안전구역에서 대기하며 구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피난 구역에는 식수 급수전이나 배연설비, 긴급 통신시설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고층 건축물 중 30∼49층 높이의 준초고층 건축물도 전체 층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층으로부터 5개층 이내에 피난 구역을 설치하도록 규정합니다.
이처럼 고층 건축물의 화재 대비를 위한 소방 안전기준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이 있지만, 불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찾아와 생명과 재산을 위협해왔습니다.
2019∼2023년 초고층·지하연계 복합건축물에서 모두 57건의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습니다.
가깝게는 2023년 10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G동 53층에서 불이나 에어컨 실외기실과 인근 세대 유리창 등을 태우고 42분 만에 진화됐습니다.
큰 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소방당국의 신속한 진압과 주민 대피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초고층·복합건축물 못지않게 고층 아파트 단지도 화재가 발생할 경우 피해 가능성이 높은 곳입니다.
특히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노후 아파트의 경우 화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7월 기준 전국 아파트 4만9천810단지 가운데 2만4천401단지(49%)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단지는 6천147단지, 15층 이하에 설치되지 않은 단지는 5천855단지에 달했습니다.
2018년 6층 이상 건물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으나,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 특히 1990년 이전 건축된 15층 이하 노후 아파트의 경우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이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화재 시 스프링클러가 중요한 이유는 소방력이 도착하기 전 초반 불길이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현행 스프링클러 관련 기준은 초고층 건축물 화재 시 40분간 작동하며 물을 쏟아낼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고층 건축물도 20분간 스프링클러가 작동해야 합니다.
이 시간은 화재 현장에 소방력이 도착해 본격적인 진화작업이 벌어지는 골든타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악 화재참사가 난 홍콩 아파트 단지의 경우 건축물 내부에 스프링클러는 있었으나 불이 대나무로 만들어진 비계와 외벽을 타고 급속히 번지면서 화재 초기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소방 전문가들은 고층 건축물에 살 경우 평소 피난 구역이 몇 층에 있는지 파악하고, 이곳으로 가는 동선을 미리 익히고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건물 내부에서 불이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평소 방화문을 제대로 닫아두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세진 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주민들이 평소에 피난층으로 가는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피난로에 적치물 등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관리실에서는 옥상 개폐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방화문도 철저하게 닫아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화재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이 난 층 안에서 화재를 최대한 가두는 것"이라며 "이를 위한 핵심은 '층간 구역(방화구역)'인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매우 미흡하고 신뢰도도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아리셀 화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도 방화구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소방법과 건축법이 관련 기준을 각각 따로 규정하고 있어 이를 합리적으로 연계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층 건축물에 사는 주민이라면 화재 대피요령을 반드시 숙지해둬야 합니다.
행정안전부가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하는 '초고층 건물 화재 발생 시 대피요령'을 보면 먼저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건물의 창문·출입문을 닫고, 외부 대피 시 가까운 피난용 승강기를 이용해야 합니다.
외부 대피가 어려운 경우 피난 안전 구역으로 대피 후 구조를 기다려야 합니다.
평소 가족이나 동료와 함께 2개 이상의 탈출계획을 만들고, 대피 시 만날 장소를 미리 정하면 화재 발생 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 속 안전교육과 재난훈련 참여하고 화재 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되 타인의 구조는 구조대원에 맡겨야 합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아파트라면 건물 자체의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화재 예방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며 "방화문이 노후화됐다면 보수하고, 자동 폐쇄 장치 등을 설치해 화재 시 문이 자동으로 닫히도록 하는 것도 큰 비용 없이 가능한 대안"이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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