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숫자들이 좀 낯설고 희한합니다. 분명 논란이 있는 사안인데도 정작 나타나는 숫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압도적입니다. 여야 구분이 없습니다. 민주당의 당원 1인 1표제 투표 결과도 그렇고, 국민의힘 지방선거 당심 반영 비율 얘기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민심과 당심 사이의 온도차가 있거나, 때로는 당심 내부의 논쟁적인 사안인데도 숫자는 경이로울 정도로 단호합니다. 정치권의 '낯선 숫자들' 이것도 '뉴노멀'일까요? 오늘은 정치권의 숫자들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두 숫자...'88.29% vs 16.81%'
먼저 민주당입니다. 정청래 대표가 추진하는 '당원 1인 1표제' 당헌 당규 개정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88.29% 찬성률이 나왔습니다. 당내 의견 수렴 절차가 부족하고 '대의원 제도의 역사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만만찮은 사안이지만 정작 투표로 나타는 숫자는 압도적입니다. 이 숫자의 힘(당원들의 절대적 지지)으로, 정청래 대표는 당헌 당규 개정안을 지난주 최고위와 오늘 당무위에서 차례로 통과시켰습니다. 일주일 연기된 중앙위원회, 최종 관문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1인 1표제
대의원 표의 가중치 없애고, 모든 당원 표에 등가성 부여하는 제도
예를 들어, 지난 8.2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때 반영 비율이
<대의원 1만6831명 15% vs 권리당원 111만1442명 55%>
환산하면 대의원 vs 권리당원 표의 비중이 약 17대1이었음.
대의원 표의 가중치 없애고, 모든 당원 표에 등가성 부여하는 제도
예를 들어, 지난 8.2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때 반영 비율이
<대의원 1만6831명 15% vs 권리당원 111만1442명 55%>
환산하면 대의원 vs 권리당원 표의 비중이 약 17대1이었음.
정청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부터 1인 1표제는 꾸준히 논의됐던 사안"이라면서 더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당내에서는 "정 대표의 연임을 위한 졸속 개정"이라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 대표가, 상대적으로 현역 국회의원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대의원을 약화시켜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란 의심이 갈등의 배경입니다. 이른바 '명청 갈등 2차전'이라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이 정도 논쟁적인 사안인데도 당원 투표 결과가 90% 가까이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둘 중의 하나겠죠. 의견을 묻는 방법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거나, (당원들의) 거대한 흐름을 정치권의 수면 위 논의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제 생각에는 여기에서 함께 봐야 할 숫자가 당원 투표율 16.81%입니다. 정청래 대표 주변에서는 높은 투표율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논쟁의 수위를 감안할 때 부족해 보입니다. 정교한 표본추출로 얻은 응답률이 아닌, "1인 1표제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주세요!" 방식의 투표율이란 점에서 겸손하게 받아들여할 숫자입니다. 참고로 지난 8.2 전당대회 때 권리당원 투표율이 호남 51.2%, 경기·인천 62%, 서울·강원·제주 58.6%였습니다. 당대표 선거 수준의 투표율은 아니더라도, 16.81%를 근거로 88.29%에 '절대다수'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낯설고 희한합니다.
국민의힘 '당심 70%' 검토?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단장 나경원 의원)이 내년 6월 지방선거 경선 룰을 '당원 70%, 국민 여론조사 30%'로 변경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당심과 민심이 괴리돼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더구나 당직자 선출이 아닌 공직후보자 선출 투표에서 현행 50%인 당심 비율을 오히려 70%로 높이겠다? 역시 낯설고 희한한 숫자 이야기입니다.
나경원 의원은 당심 70% 안을 제시하면서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인재가 공천받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장동혁 지도부와 공감 속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결국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의)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공천하겠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 국민의힘 의사결정 논리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의 한 변주로 이해됩니다.
제가 취재하고 지켜봐 온 정치의 논리라면, "민심에 역행한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는 후보라면 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라는 반론이 더 합리적입니다. 적어도 정무적으로, 지금 국민의힘 처지에 합당한 방향입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 1년이 이제 9일 남았습니다. 장동혁 대표의 취임 100일이기도 하죠. 아마 모든 언론이 물어볼 것입니다. "윤 어게인"과 "윤석열 절연"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제 더 대답을 미룰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열흘도 남지 않은 겁니다. '당심 70%'라는 숫자는 '윤 어게인'의 다른 말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희한하고 낯섭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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