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0일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적힌 현수막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6·27, 10·15 등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를 줄줄이 내놓으면서, 금융소비자들은 유례없는 '대출 절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특히 집이 한 채뿐이거나 아예 없는 실수요자들조차 교육·결혼 등으로 집을 갈아타거나 새로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출로 집값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의 자금 계획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잇단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대출 한도가 불과 몇 달 새 크게 줄어든 탓에, 부부 합산 연 소득이 1억 원을 넘어도 서울 안에서 10억 원대 아파트로 갈아타는 시도조차 쉽지 않습니다.
A 은행 대출 상담 사례를 보면, 현재 서울 2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찰공무원(연봉 7천500만 원)과 IT 기업에 재직 중인 배우자(연봉 5천500만 원)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내년 초 성동구 모 아파트 31평형으로 이사하려고 대출을 알아보다가 6·27, 10·15 두 규제가 발표된 뒤 이사 계획을 접었습니다.
올해 5월 A 은행 상담 당시만 해도 이 부부는 이미 6천500만 원의 신용대출(금리 5%·마이너스통장 방식)을 보유한 상황에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4%+2단계 스트레스 DSR로 1.2% 포인트 가산·만기 40년)를 기준으로 최대 6억 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았습니다.
하지만 6·27 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최장기간이 30년으로 줄어든 데다, 7월부터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시행되면서 새 금리(4%+3단계 스트레스 DSR로 1.5% 포인트 가산·만기 30년)를 적용한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5억 2천400만 원으로 축소됐습니다.
더구나 이번 10·15 대책에서 수도권 주택 관련 스트레스 DSR 가산 금리 하한이 1.5% 포인트에서 3.0% 포인트로 높아지면서, 한도가 4억 4천700만 원까지 더 줄었습니다.
처음 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한 6·27 이전 5월 당시(6억 원)와 비교해 다섯 달 사이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이 25.5%(약 1억 6천만 원)나 감소한 셈입니다.
한도가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도 큽니다.
광화문·강남 직장으로 출근하는 A 씨 부부가 접근성 측면에서 눈여겨본 성동구 행당동 아파트 31평형의 시세가 같은 기간 13억 5천만 원에서 14억 8천500만 원으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격이 조만간 15억 원을 넘어서면, 10·15 대책에 따라 부부가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최대 4억 원까지 떨어집니다.
B 은행에서 상담받은 연봉 1억 5천만 원의 40대 직장인 이 모씨의 처지도 비슷합니다.
중학생 자녀의 교육 환경을 고려해 올해 하반기 서울 양천구의 20억 원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대출을 알아보니, 6·27 이전에는 DSR 40%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 규제를 기준으로 10억 1천만 원 정도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파트 전세보증금 12억 원과 예금 2억 원 등을 더하면 충분히 양천구 20억 원대 아파트 구입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6·27 규제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 원으로 묶여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까지만 해도, 이 씨는 부족한 몇 억 원을 더 마련하면서 계속 기회를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0·15 대책 발표 이후로는 아예 양천구 이사를 포기했습니다.
서울 모든 구가 규제 지역으로 지정돼 LTV가 70%에서 40%로 축소되고, 스트레스 DSR 가산금리가 3% 포인트로 상향되면서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이 4억 원으로 더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은행 상담 과정에서 "연봉이 1억 5천만 원 이상이고 다른 부채도 없는데, 불과 서너 달 새 대출 가능액이 10억 원에서 절반도 안 되는 4억으로 줄었다"며 "자금 상황으로 미뤄 현실적으로 아이 교육을 위한 이사가 불가능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비쌀수록 담보력이 큰데도 반대로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규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상담 고객들의 지적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집을 갈아타거나 장만하는 1주택자·무주택자 등 실수요자가 투기세력으로 지목되는 다주택자와 별 차이 없이 강화된 규제의 대상이 되면서 자금 여력상 대출 상담이 중단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규제 탓에 금융소비자들과 은행 창구 직원의 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주요 시중은행들에 따르면 10·15 대책 발표 이후 가장 많이 접수된 문의는 크게 ▲ 생애 최초 구입자금 대출도 여신 한도 차등화 대상인지 ▲ LTV 40% 규제가 주택 구입자금 대출에만 적용되는지 ▲ 토지거래허가구역 비주택 담보대출에도 LTV 40%가 적용되는지입니다.
생애 최초 구매자 역시 대출 한도 차등화 대상이지만, LTV의 경우 소득·DSR 등 별도 심사 요건이 충족된 경우 최대 70%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입니다.
아울러 LTV 40% 규제는 구입자금뿐 아니라 대환(갈아타기)·생활안정자금 등 모든 용도의 대출에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비주택 담보대출에 적용되는 LTV 비율 논란은 정부가 자초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당초 토지거래허가구역 오피스텔·상가 등 비주택 담보대출의 LTV도 10·15 규제로 70%에서 40%로 낮아진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비주택 담보대출의 경우 70%가 유지된다고 정정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