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 어린 시절에 대니 구 씨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저는 외동이에요. 부모님과 친한데 집에서는 굉장히 조용했어요. 그리고 제가 살아왔던 동네들에 음악 하는 사람이나 아시안이 많지 않았어요. '나는 누구인가' 이런 정체성 위기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 음악의 길을 가면서 '나처럼 다양한, 특이한 사람들이 많구나' 좀 더 시끌시끌해지고 좀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되게 조용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전공하면서부터 좀 밝아진 거예요?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맞아요. 좀 밝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특이해도 돼.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런 걸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뒤늦게.
김수현 기자 : 언제부터 하셨어요?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고3 들어가기 바로 전에 결정했어요.
김수현 기자 : 그전에는 취미로 하시다가.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완전히 취미로 하다가 고3 바로 들어가기 전에 확 꽂혀서 '이걸 하고 싶다' 하면서 그 길로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왜 꽂혔어요?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어떤 페스티벌을 갔어요. 오디션 하고 면접 보고 간 건데, 솔직히 이력서에 써서 좋은 학교 가려고 지원한 거예요. 운 좋게 됐는데, 학생이 많지는 않았어요. 다 같은 나이고 클래식, 재즈, 현대무용, 시 쓰는 작가, 연극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체능 친구들이 있었는데, 5주 동안 합숙하며 컬래버레이션하면서 작업물을 계속 만드는 거예요.
너무나 재밌는 거야. '예술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도 있지만, 진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구나' 확 꽂혔던 거예요. '이것을 통해서 내가 다양한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도전하게 된 거죠.
김수현 기자 : 그게 고등학교 3학년.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네. 미국에서는 4학년, 한국에서는 고3 바로 전인 9월에 결정해서 12월에 지원했어요. 그래서 너무 운 좋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3개월 준비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게 가능해요?
김수현 기자 : 페스티벌 갔다 오고 너무 좋아서.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네, 그때 확 꽂혀서.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도 많았고 어이없어했고 '교현아(한국 이름), 굳이 이 길을 가고 싶냐' 근데 부모님도 너무 감사한 게, 푸시는 안 하지만 반대도 격하게 안 해요. '하고 싶으면 네 인생이야. 알아서 해' 이런 느낌이라서요.
또 미국 학교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미국 음대는, 특히 저학년은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기술적인 것보다 음악성, 혹은 '내가 이 친구를 4년 동안 어떻게 학생으로서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운 좋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열심히 하게 됐죠.

김수현 기자 : 우리로 치면 생기부에 쓰려고 축제에 가셨다가.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그런 느낌이었어요.
김수현 기자 : 그 몇 달 동안 엄청 열심히 연습하셨겠네요?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그렇죠. 근데 딱 음대를 들어가고 진짜 싸움이 시작됐죠. 깜짝 놀랐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구나.' 특히 한국, 중국에서 유학 온 애들이 많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진짜 영재처럼 했던 애들. 현타가 온 거예요. 그때부터 헝그리 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오케이. 나는 아직은 아니지만, 여기서 제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얻자'
이병희 아나운서 :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이건 내 자신감이 될 수 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연습실부터 들어가고 늦게 나가는 것, 거의 변태처럼. 그때부터 진짜 열심히 달렸죠.
김수현 기자 : 하루에 몇 시간?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수업 갔다 오고 그냥 하루 종일 했었던 것 같아요. 시간을 재지는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 열심히 그때부터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보통 음대 간 분들 보면, 들어가서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거나 하면 연주가의 길이 아니라 음악이지만 다른 쪽으로 한다든지. 근데 그래도 계속 나는 연주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너무 좋은 질문이에요. 2학년 때쯤 큰 슬럼프가 오긴 했어요. 현실적으로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고, 제 선생님이 너무나 좋은 할아버지 선생님인데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줘요. '대니야, 네가 학교 졸업하면 나와도 경쟁을 해야 된다. 나이 상관없이 생각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이게 가능할까?' 그때 진짜 큰 슬럼프가 왔었고요.
결론은 '내가 뭘 제일 좋아하지?' 저는 무대에 서는 걸 너무나 좋아해요. 너무 떨리고, 매니저님도 잘 알아요. 제가 너무 스트레스받는 걸. 진짜 긴장을 많이 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걸 계속 극복하는 과정이 연습하는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인데, 항상 업 앤 다운이 있는 것 같아요.
돈은 내 목표가 아니고, 내가 뭘 할 때 제일 행복할까? 결론은 '그게 무대라면, 후회 없으려면 한 번 죽도록 해보고 안 되면 오케이. 근데 아직까지는 죽도록 안 해봤으니까 해보고 결정을 하자' 이런 마인드였죠.
김수현 기자 : 무대 올라갈 때 굉장히 긴장한다고 하셨는데 푸는 방법은?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연주자마다 루틴이 달라요. 어떤 연주자는 무조건 자야 되고, 어떤 연주자는 무조건 많이 먹어야 되고, 어떤 연주자는 절대 못 먹는 식으로 루틴이 있는데, 저는 계속 악기를 잡고 있어야 되는 성격이에요. 불안해서. 확실하게 연주함으로써 긴장감이 설렘으로 바뀌니까, 연습하면서 계속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려고 하죠.
김수현 기자 : 별명 중에 '루틴 맨'이 있던데.
대니 구 바이올리니스트 : 네. 전 굉장히 루틴대로 살아요. 사실 연주자로서 너무 루즈해질 수 있어요. 연주가 항상 밤 7시 반~8시, 끝나고 밥 먹으면 하루가 새벽 1시에 끝나요. 그다음에 '어제 연주했으니까 좀 루즈해도 된다' 이게 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되게 플랜대로 살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럼 오늘은 이거 끝나고 무슨 플랜이?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