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런 일부의 우려와 달리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해마다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며 그 규모를 키워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과거 재정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됐던 중국 국적 가입자의 재정수지마저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돼 외국인 건보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 강화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 제기하는 '상호주의' 원칙 적용을 두고 국익과 차별 사이의 사회적 논의는 더욱 깊어질 전망입니다.
오늘(19일) 건강보험공단의 '외국인 건강보험 국적별 부과 대비 급여비 현황' 자료를 보면 재외국민을 제외한 순수 외국인 가입자의 건강보험 재정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8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흑자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2018년 2천255억 원이던 흑자는 2020년 5천729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고, 2023년에는 7천308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작년에는 9천439억 원의 흑자를 달성하면서 1조 원을 눈앞에 둔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이는 외국인 가입자들이 낸 전체 보험료 총액에서 이들이 병의원 진료를 통해 받아 간 보험급여 총액을 빼고도 막대한 금액이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별 흑자를 살펴보면 베트남(1천203억 원), 네팔(1천97억 원), 미국(821억 원), 캄보디아(742억 원) 등 대부분 국가에서 상당한 규모의 흑자를 기록해 전체 재정 건전성에 기여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간 꾸준히 적자를 기록해 '무임승차' 논란의 중심에 섰던 중국 국적 가입자와 관련한 재정수지 변화입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1천509억 원, 987억 원의 막대한 적자를 냈던 중국은 2023년 27억 원으로 적자 폭을 크게 줄이더니, 작년에는 55억 원의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특정 국가에 편중됐던 재정 불균형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극적인 재정 개선은 정부가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 및 이용 문턱을 꾸준히 높여온 정책적 노력의 결과입니다.
과거에는 외국인이 국내 입국 즉시 직장가입자의 가족(피부양자)으로 등록해 보험료 납부 없이 고액의 진료를 받고 출국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작년 4월 3일부터 외국인 및 재외국민은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해야만 피부양자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했습니다.
다만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 등 일부 예외는 뒀습니다.
이 조치 하나만으로 연간 약 121억 원의 재정 절감 효과가 기대됩니다.
이에 앞서 2019년 7월에는 6개월 이상 체류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고, 작년 5월부터는 병의원에서 신분증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의무화해 건강보험증 불법 도용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이처럼 촘촘해진 제도가 불필요한 재정 누수를 막고 재정수지를 흑자로 이끈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견고한 흑자 기조에도 정치권 등 일각에선 여전히 '상호주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상대 국가가 우리 국민에게 제공하는 건강보험 혜택 수준에 맞춰 외국인에게도 보험 혜택을 차등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재정 적자인 특정 국가만을 겨냥해 상호주의를 적용할 경우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고 국제 통상 규범에 어긋날 소지도 있습니다.
또한 국내 체류 외국인의 대다수가 우리나라보다 의료보장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상호주의 도입이 자칫 특정 국적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도 체류 기간이나 취업 여부로 가입 자격을 제한할 뿐 출신 국가를 이유로 보장 수준에 차별을 두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