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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도 역전 금메달…비렌과 파라의 평행이론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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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의 이유빈 선수가 계주 준결승에서 레이스를 펼치다 넘어지고도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해 화제가 됐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그 여세를 몰아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환호했는데요, 올림픽 육상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레이스 도중에 넘어졌지만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경우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핀란드의 라세 비렌, 그리고 영국의 모 파라인데요. 평행이론이 딱 들어맞을 만큼 다른 시대에 거의 같은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올림픽 데뷔 무대에서 넘어진 23살 핀란드 경찰관
라세 아르투리 비렌은 1949년 2월생으로 핀란드 경찰관 출신입니다. 그는 23살이던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첫 경기는 남자 10,000m로 마라톤을 제외하면 최장거리 종목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였는데요, 단 한 번의 레이스가 이 선수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당시 남자 10,000m 결승에 나선 선수는 모두 15명. 25바퀴를 도는 레이스에서 비렌은 경기 중반까지 중위권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12바퀴째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5위로 달리던 비렌이 직선 주로에서 뒤에 있는 선수와 발이 부딪치며 넘어지고 말았습디다. 이 여파로 비렌의 뒤에 뒤에 있던 선수가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레이스를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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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렌은 달랐습니다. 통증을 참고 재빨리 일어나 다시 달렸습니다. 순식간에 최하위로 처진 비렌과 선두 그룹과의 격차는 약 20m. 비렌은 안간힘을 다해 선두 그룹을 추격했는데요, 20여 초 만에 거의 따라잡았습니다. 관중석에서는 비렌을 응원하는 격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비렌은 나중에 이때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내가 일어나서 보니 선두 그룹은 이미 코너를 돌고 있었다. 무조건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넘어지고도 세계신기록으로 역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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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처음 나온 비렌, 특히 10,000m는 첫 번째 종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난 비렌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후 침착함을 되찾아 혼신의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비렌은 16번째 바퀴부터 선두에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넘어진 지 4바퀴 만에 선두를 꿰차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지요. 핀란드 관중은 국기를 흔들며 뜨거운 응원을 펼쳤습니다. 비렌은 끝까지 선두를 지킨 끝에 27분 38초4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정말 대단한 명장면을 연출한 것이지요. 레이스 중반에 넘어진 상황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역전 금메달을 따낸 것만 해도 엄청난데 세계신기록까지 세운 것은 한마디로 경이적입니다. 비렌은 기세를 몰아 며칠 뒤에 벌어진 5,000m에서도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며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사상 최초 장거리 2종목 2회 연속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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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올림픽 이후 스타가 된 비렌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는데요, 이번에도 5,000m와 10,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올림픽 육상에서 사상 최초로 장거리 2종목을 2회 연속 석권한 것이지요. 1920년대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는 육상에서 통산 9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레전드인데요, 비렌도 대선배 누르미의 뒤를 이어 전설이 됐습니다.

비렌은 더 욕심을 냈습니다. 체코의 전설 '인간 기관차'로 불렸던 에밀 자토펙이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 그리고 마라톤까지 석권하는 신화를 창조했는데요. 비렌도 이 대기록에 도전했지만 마라톤에서는 5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10,000m에서 5위에 머물렀습니다. 비렌은 이후 핀란드 국회에 들어가 국립 연합당의 의원(1999~2007, 2010~2011)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44년 만에 리우에서 재현된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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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렌이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지 44년 뒤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10,000m 결승에서 거의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사자는 바로 영국의 스타 모 파라였습니다.

1983년에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파라는 28살이던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5,000m 금메달과 10,000m 은메달을 따면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영국 국적의 파라는 자국 런던에서 벌어진 2012년 올림픽에서 10,000m를 제패하며 영국 선수로는 이 종목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어 5,000m까지 제패하면서 영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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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장거리 육상의 최대 관심은 모 파라가 라세 비렌의 1976년 2종목 2연패 신화를 40년 만에 재현할 것인지에 쏠렸습니다. 10,000m 경기가 먼저 열렸고 이목은 역시 모 파라에 집중됐습니다. 그런데 모 파라는 10바퀴째를 달리다 가슴 철렁하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코너를 돌다 바로 뒤에 있던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인데요. 모 파라는 재빨리 일어나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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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정말 명승부였는데요. 모 파라는 역주를 거듭한 끝에 2바퀴 반을 남기고 마침내 선두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300m 남기고 뜻밖의 장면이 나왔습니다. 케냐의 폴 타누이가 무섭게 스퍼트해 파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선 것입니다. 파라의 우승이 쉽지 않아 보였는데요, 하지만 파라는 마지막 코너에서 믿기 어려운 스피드를 내며 90m를 남기고 다시 역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1위로 들어왔습니다. 10,000m를 2연패 하는 순간이었는데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파라는 그라운드에 엎드려 벅찬 감격을 누렸습니다.

넘어지고도 극적으로 역전 금메달을 따낸 파라는 며칠 뒤에 벌어진 5,000m도 제패해 장거리 두 종목을 2회 연속 석권했습니다. 라세 비렌에 이어 40년 만에 두 종목 2연패 위업을 달성한 것입니다.

영국 영웅 파라의 충격적 고백
모 파라는 세월이 한참 지난 2022년에 충격적인 고백으로 다시 화제의 중심이 됐습니다. 파라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는데 8살 때 내전을 피해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원래 런던에서 태어났고 직업은 IT컨설턴트로 영국 시민권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요. 그런데 모 파라는 2022년에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BBC 다큐멘터리 '진짜 모 파라(The Real Mo Farah)'에서 자신의 '진짜' 과거를 털어놓은 것입니다.

진실은 이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파라가 4살일 때 소말리아 내전으로 사망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모 파라 본인은 9살 때 영국에 불법 인신매매로 입국해 강제로 가사 노동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진짜 이름은 '후세인 압디 카인'인데요. 모 파라는 위조 여권에 표기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협박 때문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어린 파라는 용기를 내 체육 교사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습니다. 이후 체육 교사는 사회복지국에 연락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될 수 있도록 그를 도왔습니다. 그때부터 파라는 육상 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4세 때 영국 학생을 대표해 라트비아에서 열린 대회에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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