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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매수자들 어찌하오리까"…한숨짓는 중개사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모습(사진=연합뉴스)
▲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모습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토박이 공인중개사 A 씨는 최근 고가의 펜트하우스를 거래하려다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래미안 원베일리 펜트하우스를 사겠다고 온 중국인이 매수자와 협의해 계약서까지 썼는데, 약속한 날까지 계약금을 입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약 다음 날까지 보내기로 했던 계약금은 5일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아 거래는 무산됐습니다.

A중개사는 "거래 금액이 많거나 당사자들의 사정으로 계약하는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이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단 계약서는 쓰고, 계약서의 효력은 계약금이 입금되는 순간부터 발효된다는 조건을 건다"며 "계약금이 안 들어와 계약은 무효가 됐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매도자와 어렵게 접촉해 계약서를 썼는데, 결과적으로 헛수고만 하고 매수자 확인을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매도인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가 중개사 지인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최근 용산구 나인원한남을 비롯해 서울지역 초고가 아파트 5∼6곳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가짜 계약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입금도 하지 않은 계약서들을 모아서 재력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매도자도 화가 나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중개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A 씨는 해당 중국인을 업무방해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중개사들이 '가짜 매수자'들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더욱 극심해진 '임장 크루(임장 활동을 다니는 사람들)'는 최근 중개사들의 최대 고민거리입니다.

임장(臨場)이란 현장 조사를 간다는 의미로 과거에는 부동산 매수에 앞서 매수 물건의 입지와 투자가치 등을 확인하려는 목적이 많았다면, 최근엔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스터디 모임 형식의 임장이 크게 늘었습니다.

현재 네이버 카페에는 임장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개설된 커뮤니티가 100여 곳이 넘습니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나 사설 경매 학원 등에서 진행하는 임장 수업 과정도 전국 각지에 수두룩합니다.

한 공인중개사는 "임장을 나오는 사람들은 2030부터 4050까지 다양하고 점점 규모화, 조직화되어가는 느낌"이라며 "입지 분석을 위한 단순 현장 답사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업 과제로 주어진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집주인 또는 임차인이 거주하는 매물도 보여달라고 요구해 중개사들이 힘들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개사들은 몇 마디 대화로 임장 크루임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물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모두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입니다.

부부로 위장해 실수요자처럼 오기도 하고, 추후 잠재 고객이 될 가능성도 있어서입니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물을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보자고 요구하고 거기에 응하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가버린다"며 "거래가 워낙 없어 조금 의심스러운 게 있어도 반신반의하면서도 물건을 보여주는데 역시나 임장 크루임이 확인되면 허탕 친 시간이 아까워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중개사는 "집을 보여주려면 집주인 또는 임차인과 약속을 잡고 시간 조율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임장 자체가 목적인 실체 없는 매수자 때문에 수요가 많은 것으로 착각해 매도를 보류하거나 가격을 올리는 등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종호 신임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은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집만 보고 가는 임장 크루들에게 임장 수수료를 받는 '임장 기본보수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업계가 시끌시끌합니다.

중개사들이 권리관계를 분석하고, 집주인 등과 약속을 조율하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면 중개수수료에서 임장 보수는 차감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단 시장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가뜩이나 높은 중개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 새로운 수수료를 만들어 집을 사려는 매수자에게 이중 부담을 준다는 것입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장 보수를 받겠다는 것은 마치 백화점에서 아이쇼핑했는데 직원이 물건을 보여주고 설명했다는 이유로 돈을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매물을 보여주고 권리분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거래까지 가기 위해 중개인이 해야 할 당연한 서비스인데 별도 보수를 달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중개사협회 측은 "임장 크루 등으로 인해 중개사들의 애로가 크고 시장 교란 우려가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중개수수료 개편을 추진할 때 함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며 수위 조절에 나섰습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반응도 부정적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인중개사가 매물을 소개했다고 비용을 받는 게 국민 정서에도 맞는지 의문"이라며 "현재 공인중개사법상 중개보수 외에는 별도의 수수료를 받을 수 없고, 법을 바꿀 계획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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