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동차가 달리고, 그 사이를 오토바이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차들은 멈췄고,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누군가는 파란 불빛이 점멸할 때 뛰었고, 누군가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멈춰 섰다. 빨간 불은 멈추라는 누구나 아는 도로 위의 규칙이고 질서였고, 약속이었다.
그날도 도시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하루가 되었다. 2023년 9월, 한 배달라이더가 교차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음식이 식지 않게, 고객의 역따(낮은 평가로서 '싫어요'평가)는 생존의 문제로 여겨져서, 배달시간을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지 못하고 직진을 택했다. 결국 그는 다시 달리지 못했다.
망인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임을 신청했다. 그런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는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뒀다. 그 죽음이 산업재해인지 판단하는 1차 기관은 근로복지공단이다. 망인은 사고의 원인이 구조적 문제인 산업재해라고 인정받았을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②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②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그 신호위반이 범죄행위로서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2024년 1월 근로복지공단은 '신호위반이라는 일방적 중과실로 인한 것으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산업재해임을 부정했다. 그런데 운전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한다. 도로 위 운전자는 언제든지 잘못이나 부주의로 발생할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교통법규를 지켰더라면, 신호를 조금만 기다렸더라면 이란 말은, 길 위에 나서는 라이더들의 삶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콜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몇 초를 아끼는 삶, 늦었다는 이유로 낮은 평점을 받는 구조, "12시 1분은 12시가 아니다"라는 한 배달플랫폼 회사의 슬로건이 던지는 무심한 압박은 큰 무게이다.
2023년 9월 그날 망인은 "배달 지연 등으로 인한 고객의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음식을 배달"해야 했고, 사고 당일에는 무려 "32회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2025년 3월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사고 당시 육체적-정신적 피로"의 누적으로 "순간적 집중력 또는 판단력이 저하돼 신호위반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망인의 죽음을 산업재해라고 인정했다. 신호위반이더라도 그 사고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었다면 사고의 발생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