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눈 감으면 벌건 불길이 아른"…물리적 피해에 마음의 병까지

대피소에서 휴식 취하는 산불 이재민(사진=연합뉴스)
▲ 대피소에서 휴식 취하는 산불 이재민

"눈만 감으면 벌건 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게 눈앞에 아른거려요. 빨리 우리 집 천장 아래서 잠들고 싶은데…."

엿새째 산불이 잦아들고 있지 않은 오늘(27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윤 모(85)씨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윤 씨는 산불이 시작됐던 지난 25일 오후, 집너머 산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이웃들과 군청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일단 집을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윤 씨는 양팔을 쭉 뻗으면서 "이만큼이나 규모가 큰 불길은 처음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바람을 타고 불이 산에서 집 근처 나무로 붙었는데, 그 기세가 너무 무서웠다"며 "타버린 산에 다녀온 이웃들 말로는 흙이 다 부슬부슬하다고 한다. 여름에 산사태라도 나서 마을이 쑥대밭이 돼버리는 건 아닐까 싶다"며 걱정했습니다.

폐허가 된 가옥, 홀로 남겨진 강아지(사진=연합뉴스)


불을 피해 나온 이재민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당시 느꼈던 공포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의성체육관에 머무르고 있는 김 모(77)씨도 "아직도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화재로 집을 잃었습니다.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15년간 혼자서 살아온, 그 한평생의 역사가 담긴 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집이 다 타버렸다는 뉴스를 본 뒤 김 씨의 아들은 서울에서 의성으로 한달음에 내려왔다고 합니다.

함께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김 씨는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 여태껏 자식들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집도 잃고 자식들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김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 봉사나 밥차 봉사를 나갔는데, 상황도 이렇고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 이번 주엔 가지 않았다"며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의성체육관 대피소에 설치된 찾아가는 재난심리상담소(사진=연합뉴스)


의성체육관 임시대피소에서 상담 지원을 하는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지사 성 모 활동가는 "집을 잃은 분들 중에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대피 당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성 활동가는 "당시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죽음에도 애도가 필요하듯 갑작스러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익숙한 이웃들과 함께 대피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호흡법 등을 안내하면서 최대한 안정을 찾게끔 돕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