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너자 2>의 포스터
중국 영화의 역사가 연일 새로 써지고 있다. 올해 1월 29일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Nezha) 2>가 연일 중국대륙의 관객들을 끌어모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불과 개봉 열흘여 만에 중국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인 <전랑(戰狼) 2>가 세운 1억 9천만 명 관객수 기록을 깨고 사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3월 1일 현재 통계로는 관객 수 2억 9천2백만 명, 수입액 142억 위안(약 20억 달러)을 기록하면서 중국을 넘어 전 세계 역대 영화 흥행액 순위에서도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와 <스파이더맨(Spider-Man : Homecoming)>을 넘어 7위를 차지했다. 현재도 상영 중으로 위쪽 순위에 랭크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저스(Avengers: Infinite War)>, <스타워즈(Star Wars: The Force Awakens)>의 흥행 기록도 넘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흥행 성적의 수치 대부분은 중국 내에서 올린 결과이기는 하나 미국에서 7백여 곳,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백여 곳 등 중국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해외 영화관에서 상영되었고, 글로벌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서도 비교적 높은 평점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너자> 포스터
<너자 2>의 흥행은 사실 6년 전인 2019년, 1편 격인 <너자>가 처음 개봉되자마자 애니메이션 관련 상을 휩쓸고, 중국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성적 1위에 오르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었다. 영화 <너자(Nezha)>의 중국어 원명은 <哪吒之魔童降世(너자즈모통장스)>로 '너자라는 악동 마귀가 세상에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2편은 <哪吒之魔童鬧海(너자즈모통나오하이)>로 너자가 이번에는 '바다를 뒤집어놓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너자> 시리즈는 일반적인 중국 애니메이션 수준에 대한 선입견이나 의구심과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못지않은 스토리 구성과 전개, 그래픽 수준을 보여준다.
<봉신연의> 소설책과 영화
'너자'는 우리 한자 발음으로는 '나타'로, 중국 고대 전설 속 신선(神仙) 중의 하나이다. '나타'는 진(晉), 당(唐), 송(宋) 대의 서적과 서유기(西遊記)에도 등장하며, 명(明) 대에 쓰인 신마(神魔) 소설의 하나인 <봉신연의(封神演義)>을 통해 보다 널리 알려졌다. <봉신연의>는 상(商)나라의 폭군인 주왕(紂王)과 그를 물리치려는 주(周)나라 무왕(武王) 간의 싸움을 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유명한 미녀 달기(妲己)와 강태공(姜太公)으로 알려진 태공망 강자아(姜子牙)도 등장한다.
<봉신연의>는 허중림(許仲琳)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무왕벌주(武王閥紂)'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각색, 편제한 것이며, 또한 역사적 내용과 인물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들을 신선화(神仙化), 마귀화(魔鬼化) 시킨 사회풍자 소설이자 중국식 판타지 스토리라고 하겠다. 제목의 '봉신(封神)'의 의미가 상주(商周) 간 싸움에서 생명을 잃은 혼백 365명을 신(神)으로 봉(封)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봉신연의> 전체 스토리보다는 악동 나타에게 포커스를 둔다. 나타는 아버지 이정(李靖)과 은부인(殷夫人) 사이에서 태어난다. 태초에 하늘과 땅의 정기를 가진 혼원주(混元珠)가 푸른빛을 띤 선한 영주(靈珠)와 붉은빛을 띤 악한 마환(魔丸)으로 나뉘었는데, 태을진인(太乙眞人)이 지상에 실수로 영주 대신 마환을 내려보내, 은부인이 3년 만에 악동의 화신인 '나타'를 낳게 되는 것이다. 나타는 태어나자 곧 꼬마 대마왕(大魔王)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주위에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미움을 받았으며, 부모는 아이가 선한 행동을 하도록 교육하고 사랑을 준다.
영화에서는 나타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염성 있게 묘사한다. 특히, 나타의 눈 주위가 까만 것을 두고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다크서클이라고 묘사하면서 관련된 짤 영상이나 블로그 글이 관심을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인물들이 캐릭터화되면서 온오프라인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실 '너자'와 '너자 2'의 성공 배경에는 만두(餃子)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쓰촨대(四川大學) 약학대 출신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인 양위(楊宇)의 개인 역량이나 영화사의 투자와 자본력 등이 주효했지만, 십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 고전을 발굴하여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의 IP화 하기 위한 당국의 정책도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중국 제18차 당대회 보고서는 사회주의 문화강국(文化强國) 건설과 문화 소프트파워(文化軟實力)의 증강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2017년 19차 대회 보고에는 문명사적 전통에 근거한 '문화적 자신감(文化自信)'의 증강을 중요한 항목으로 제시했다. 문화강국 건설과 문화자신 수립, 이를 위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통치 이념으로 개념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산업과 관련해서는 2005년 관련한 발전 정책을 내놓은 이래, 관련 당국에서 주요 시기마다 제도와 금융적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작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장안삼만리(長安三萬里)>는 당나라 시기 시인(詩人)들 간의 스토리를 다룬 장편 역사물임에도 4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 2위에 랭크되었다. 지금도 공중파 TV, 라디오,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 영화 등 모든 레거시와 뉴 미디어에는 전통 소재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쓰촨성 이빈시 전경
'너자(나타)'의 고전 속 형상 및 이빈시 소재 '나타 행궁'
영화 <너자>가 대흥행을 하자 중국 곳곳이 주인공 너자(나타)와의 이런저런 인연과 증거물을 내놓으며 연고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허난(河南), 톈진(天津), 쓰촨(四川) 등의 고장들이 나섰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쓰촨 이빈(宜賓)이다. '나타 행궁(哪吒行宮)' 등 건축물에는 매일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이빈시 남쪽 지역의 옛 이름(陳塘關)이 전설에 나오는 지명과 같고, 강이나 산세 등에 대한 묘사가 현지 지리와 부합된다고 한다. 1990년에는 타이완의 도교 주지가 꿈에서 계시를 받고 이빈 추이핑산(翠屛山)에 와서 '나타 동굴(哪吒洞)'을 발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빈은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 남쪽에 창강(長江)이 지나는 수려한 풍광의 역사 도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백주 '우량예(五粮液)'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너자>와 같은 애니메이션은 무궁무진한 중국 고전 신화 속에서 끌고 나온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여, 현재 세계 시장의 주류인 미국 마블코믹스 소재 애니메이션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고전 소재 애니메이션은 중국 국내적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이라는 일차적 목적 외에, 저작권 등 문제에 자유로우면서 스토리와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문화 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 및 흥행 수입을 거둘 수 있고, 아울러 친근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통해 부드러운 중국의 문화외교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국에게는 일석몇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동시에 다른 관점에서는 문화 콘텐츠 속의 중화주의와 문화 패권주의적 속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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