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일린 트란
그 모든 일은 작은 소시지에서 시작됐습니다.
2012년 5월 29일, 친구들을 초대해서 모임을 갖고 있던 에마뉘엘 트란은 막내딸 메일린에게 소시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는 그걸 받아 소파로 갔습니다.
갑자기 메일린이 말없이 발을 동동거렸습니다.
아이의 입에선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숨을 못 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이후 모든 일은 정신없는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에마뉘엘은 의식이 없는 딸을 상대로 인공호흡을 하고, 119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메일린에게서 심정지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 긴급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뇌는 정지된 상태고 경련도 잇달았습니다.
폐에도 물이 찼습니다.
온갖 응급처치를 해도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었습니다.
산소호흡기 등 온갖 생존 장비와 검사 도구가 3살 반짜리 아이의 작은 몸에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담당 의사는 뇌 무산소증 등으로 아이의 뇌가 전반적으로 손상을 입어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사고 10일째가 지나자 의료진이 영양공급 중단을 제안했습니다.
아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굶겨서 죽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영양공급을 중단하지 않더라도 몇 주, 혹은 몇 달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저런 결정을 어떻게 그리도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에마뉘엘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와 가족들은 버티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변에서도 도움을 줬습니다.
첫째 딸 루안이 다니는 학교는 메일린을 위한 9일간의 특별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메일린의 이야기는 여기저기 퍼져 이곳저곳에서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가족의 이사로 메일린은 프랑스 리옹에서 니스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서 에마뉘엘 부부는 메일린에게서 발생하는 어떤 변화를 느꼈습니다.
부모만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변화였습니다.
"꼼짝 않고 누운 모습은 전날 리옹에서 본 그대로였지만, 우리는 뭔가를 감지했다. 아이는 달라졌다. 눈동자는 빛났다. 메일린의 몸에 다시 생명이 깃들었다."
아이는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누운 상태에서 뒤집을 수 있고, 자극에도 반응하며, 말을 건네면 '네'라며 응답도 하려고 했습니다.
의료진은 이제 메일린의 죽음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며 이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난간을 붙잡고 일어서고, 음식을 먹게 되며 사고 넉 달이 지나서는 혼자서 일어날 수 있게 됐으며 8개월이 지나서는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될 터였습니다.
의사들도 본 적이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이런 회복은 본 적이 없어요. 일률적으로 쪼그라들었던 뇌가 거의 완전히 제자리를 되찾았어요. 두개골과 뇌 사이의 공간이 완전히 정상이에요."
최근 출간된 '메일린의 기적'은 심각한 뇌 손상을 극복하고 생환한 한 아이의 '기적'을 다룬 에세이입니다.
메일린의 아빠 에마뉘엘 트란이 썼습니다.
책에는 아이를 되살리기 위한 부모의 각오와 의지가 오롯이 묻어납니다.
그 의지는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일린의 사례는 바티칸의 심사를 거쳐 2020년 5월 26일 '기적'으로 공인됐습니다.
신의 축복 때문인지, 아이의 타고난 회복력 때문인지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해 체감하지 못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안겨주는 소중함입니다.
진짜 기적은 작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명의 취약성도, 눈 깜짝할 새에 이별이 일어날 가능성도, 우리가 이뤄낸 성취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가능성도, 일상이 흔들리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생겨나고 최악의 순간과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된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달았다."
(사진=마음산책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