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이름으로 대놓고 수의계약…두 차례 생수 납품
수의계약 내역에는 업체 대표자명으로 이 의원 본인 이름이, 업체 주소란에 이 의원 집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방의원들이 부적절한 수의계약을 맺을 때 가족이나 지인을 대표로 앉히거나 잠시 지분을 넘기는 식의 꼼수를 쓰는 것과 달리 지나치게 당당해 보입니다.
업체 사무실은 따로 없었습니다. 이 의원이 생수를 받아온다는 경기 고양시 소재 생수 창고에 직접 가봤더니, 사장은 자신이 본사에서 받아온 생수를 이 의원을 비롯한 개인 사업자들이 차로 가져가 판매한다고 했습니다.
이유 묻자, "물은 마셔야 하니까" "떳떳하다" 황당 해명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원]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요?) "아니 생수니까. 물은 안 마실 수 없으니까. 물은 마셔야 될 것 아닙니까?"
(징계를 받은 게 있나요?) "너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상당히 불쾌합니다. 제가 알고 그렇게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인체의 75%가 수분으로 돼 있는데 물 자체를 먹어야 되니까."
큰 금액이 아니라 떳떳하다고 했습니다.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회 의원]
그런 식으로 다 따지면 대한민국 의원들 전부 그냥 다 '열중쉬어'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큰 금액이 들어가고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저도 그래서 떳떳하기 때문에…
"명백한 행동강령 위반"…반복된 영등포구 수의계약 논란
영등포구의회에서 수의계약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3년 전 다른 영등포구의원이 수의계약 문제와 관련해 '공개 사과'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산하기관에 수의계약 배제 대상자 명단을 전달하고 투명한 계약 절차를 거치도록 관리할 책임은 영등포구에 있습니다. 영등포구의회 측은 지방의원 및 가족 명단을 영등포구청에 넘겼다고 했습니다.
반면,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측은 "수의계약을 따낸 업체 대표가 지방의원인지 알 수 없었다"며 "계약 전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청렴서약서를 작성한 쪽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소액이고 관내 업체라 수의계약을 진행한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계약 한 달 전 "수의계약 확대" 요구…이해충돌 소지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원 (2020년 12월 영등포구의회 본회의)]
"본 의원은 수의계약 기준액을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할 것을 제언합니다."
"관내 수의계약 업체의 수주율이 낮아진 데 따른 보완책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1인 견적 수의계약 개선의 목적이 관내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상생하는 정의로운 시장경제 조성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구 집행부에서는 이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등포구 기획재정국장 (2020년 12월 영등포구의회 본회의)]
"의원님 말씀에 공감하여 이에 2021년도에는 관내 기업 수의계약 제한 건수는 5건에서 7건으로 상향함으로써 특정 업체에 편중 계약을 방지하고 관내 업체 계약 비율이 높아질 수 있도록 시행할 계획입니다."
위 발언 바로 한 달 후, 이 의원의 생수 납품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이처럼 수의계약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제도 변경까지 요구했던 이 의원이 산하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으면 안 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지 의문이 듭니다.
부실한 법도 한몫…"수의계약 사각지대 없애야"
물론, 모든 사각지대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광역단체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기초단체나 그 산하기관으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낼 경우에는 여전히 제한할 규정이 없습니다. 가령, 강남구를 지역구로 하는 서울시의원이 강남구와 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는 겁니다. 부당한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완전히 차단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SBS <끝까지판다>팀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의계약 내역을 받아 확인해보니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수의계약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A /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2019.2~2022.4 본인 명의, 지역구 구청과 5건, 총 3,766만 원 납품 수의계약
2020.3~2022.5 본인 명의, 지역구 구청 산하기관과 14건, 총 1억 75만 원 납품 수의계약
[B / 국민의힘 경상북도의원]
2018.12~2019.10 부인 명의, 지역구 군청과 3건, 총 4,369만 원 공사 수의계약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지방의회 실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한삼석 /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행동강령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지난 5월부터 이해충돌방지법으로 상향됐습니다. 앞으로 지방의원이 부당한 수의계약을 맺으면 징계뿐만 아니라 과태료까지 부과받게 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향후 이해충돌방지법을 포함한 반부패규범이 지방의회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이 의원 사례 보도 직후 영등포구의회 측은 의장단 회의를 열고 의원 징계에 관한 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제대로 된 징계와 제도 개선 조치가 나올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판다>팀은 지역 주민이 낸 세금이 지방의원의 사익 추구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겠습니다.
※ SBS <끝까지판다> 팀은 지방의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제보를 받습니다. pan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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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정반석, PD : 김도균, VJ : 김준호, 제작 : D콘텐츠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