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이 됐는데요, 침공 이후 미국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 두 명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과시했죠. 미국 외교와 안보를 책임진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죠. 군사 외교적 선물 보따리를 풀고 '러시아는 실패하고 우크라이나는 성공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던졌는데요, 푸틴 보라고 하는 말과 행동으로 봐야겠죠.
"우크라, 푸틴보다 오래 갈 것이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현지 시간 기준으로 24일 키이우를 방문해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저녁 시간에 만난 뒤 25일 폴란드로 나온 걸로 파악되네요. 두 사람은 전쟁 후 키이우를 찾은 유럽 정상들처럼 폴란드에서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는데요, 우크라이나 영공은 피격 우려 탓에 사실상 항공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애초 미국 백악관과 정부는 두 장관의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았는데요, 젤렌스키 대통령이 두 장관의 방문을 알리면서 '극비 일정'이 공개된 거죠.

블링컨 장관은 폴란드로 나온 뒤 기자들에게 방문 결과를 설명했는데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권보다 오래갈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성공하고 있다"는 말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의 뜻을 표시했죠.
블링컨 장관의 발언 내용을 조금 더 볼까요.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우크라이나 정부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직접 보여줄 기회였다. 이렇게 직접 만나 자세히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는 일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계속 잔혹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인은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키이우 길거리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봤으며 이는 우크라이나가 키이우에서 승리했다는 증거"라고 했네요.
푸틴 보란 듯, 선물 보따리 풀었다
블링컨 장관과 오스틴 장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약속했는데요, 우크라이나에 군사 차관 3억2,200만 달러(약 4천20억원)를 지원하고, 이 지원을 포함해 동맹국과 협력국 15곳에 7억1,300만 달러(약 8천900억원) 어치의 군사 차관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되고 있죠. 15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군수 장비를 지원하는 국가이고요. 이 지원금은 기부가 아닌 차관 형식이며 미군의 군수물자를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고 하네요.
미국은 또 우크라이나에 1억6,500만 달러(약 2천60억원) 어치의 탄약 판매를 승인했는데요, 이 탄약은 우크라이나군이 사용 중인 구소련제 무기와 호환 가능한 종류라고 AP통신 같은 외신들이 전하고 있죠.

신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요,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슬로바키아 대사인 브링크를 우크라이나 대사로 지명할 것이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보도되고 있네요. 브링크는 2019년부터 슬로바키아 대사로 근무하고 있고요, 그 전에는 조지아, 우즈베키스탄에서 근무한 적 있는 직업 외교관이죠.
미국은 또, 러시아 침공 직전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철수했던 외교관을 이번 주부터 복귀시킨다고 합니다. 복귀하는 외교관들은 르비우(리비우) 지역에서 업무를 보게 되는데요, 현재 폐쇄 중인 키이우 주재 미국 대사관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문을 열지 않을 방침이라고 하네요.
블링컨 장관은 "2주 안에 키이우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네요.
서방 지도자 잇따라 키이우로…왜?
앞서 이달 9일에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는데요,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깜짝 방문'이었죠. 존슨 총리는 우크라이나와의 연대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파했는데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21세기 들어 가장 위대한 군사적 위업을 이뤘다"고 치켜세우고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약속했거든요.
당시 존슨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무장병력의 경호를 받으며 키이우 시내를 걷고 시민들을 만나는 모습을 연출했는데요, 존슨 총리가 키이우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은 나중에 공개됐죠.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했는데요, 키이우에서는 "오늘 자유롭고 민주적인 유럽의 심장, 키이우에 있다"고 SNS에 올렸고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현장 중 하나로 지목된 키이우 외곽 도시 보로디안카를 방문한 뒤에는 "역사는 이곳에서 자행된 전쟁범죄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죠.
서방 주요국 정상이나 고위 관리가 우크라이나 입국을 단행하는 배경에는 전황과 여론의 변화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죠.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으로 러시아가 키이우 진격을 포기하고 남부와 동부로 공격 목표를 바꿨는데요, 상대적으로 키이우는 위협이 줄었죠. 또 민간인 집단학살 정황 때문에 러시아를 향한 서방국 대중의 분노와 반감이 급증해 국내 정치적으로도 방문의 이점이 커지기도 했고요.
푸틴부터 만난다? 우크라, 구테흐스 비판

근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서방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네요. 우크라이나 종전을 중재하려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우선 만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죠.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지시간으로 26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 등을 만난 뒤에 우크라이나로 가서 28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동한다고 해요.

이를 두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방문 순서를 겨냥해 "정의도, 논리도 없다"고 직격했네요. 우크라이나를 먼저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밝혔는데요,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고 모스크바 거리에는 시신도 없다. 우크라이나로 먼저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침공이 초래한 결과를 목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죠.
유엔 측은 이번 순방의 목표가 평화와 중재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네요. 조브크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미 NBC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기획하는 평화회담에서 성과가 있을지 정말 의심스럽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요, 푸틴이 유엔의 중재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분석들도 있네요. 영국 존슨 총리가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러시아의 선전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고요.
오늘의 한 컷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파행 끝에 산회됐죠. 내일 다시 열린다고 하는데요, 내일도 청문회가 순탄치 않을 듯하네요.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