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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그날, 내 삶을 파탄으로"…물거품 된 진상규명

[SBS 스페셜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 다 하지 못한 말 2부 ③

용현의 삶이 전파를 탔다.

29일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 다 하지 못한 말 <2부작> 2부'를 부제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켜본 용현의 삶을 담았다.

이날 방송은 요한이자 씨돌로서 역사와 함께한 용현의 모습을 담았다.

1982년, 제주도의 용현은 조작간첩사건을 마주했다. 제주 조작간첩사건 피해자 강광보 씨는 "당시 조금만 의심 있으면 무조건 잡아넣었다"라고 회상했다.

제주에 장애인 자활시설을 만들고자 했던 용현은 모습을 감췄다. 파라과이 지인은 "요한 형이 군사정권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다른 세계를 살아봐야겠다'"라고 말했다.

1986년, 그는 파라과이 교민회 총무 김요한으로서 현지 군부 독재의 실체를 지켜봤다.

당시 파라과이 군부 독재자 스트로에스네르는 원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냈고, 독재반대 시위에 나섰던 성직자들은 납치와 고문을 당하며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이브루 로헬리오 '진리와 정의' 위원회 대표는 "군인들이 죽은 여자(수녀)의 시체를 그냥 두라고 했다. 군사정권은 위반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법원 명령 없이 감금하고 고문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녀의 시신을 망향각에 수습했다.

1987년, 강원 정선군 봉화치 마을의 그는 세례명 요한으로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접했다. 그는 "친구가 맞아서 죽고, 선배님들이 끌려가 죽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가. 인간의 도리 아닌가"라며 진상규명 활동에 나섰다. 1989년 2월, 그는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이후 그는 해발 800m의 산골마을을 택했고, 30년 간 씨돌로 살아왔다. 그는 "나 같이 못난 사람도 받아주는 자연이 좋다. 지나간 모든 아픔들이 씻겨진다"라고 말했다.

파라과이 교민들은 그의 헌신적 봉사를 "잊어버릴 수 없다. 성직자가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인 것처럼 파라과이에서 봉사를 했던 분이 훌륭한 일을 하셨다니 자부심도 있고 존경스럽다"라고 회고했다.

(SBS funE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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