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집권당 '오성운동'의 대표를 맡고 있는 현직 부총리와 이 정당의 간판 정치인이 오성운동 소속 정치인에 대한 언론의 논조를 문제 삼으며 기자들을 '하이에나', '창녀' 등 원색적인 단어로 비난해 기자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습니다.
13일 ANS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성운동을 이끄는 루이지 디 마이오(32)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로마시 인사와 관련해 위증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비르지니아 라지(39) 로마 시장에게 지난 10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언론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대다수 언론이 그동안 라지 시장을 근거없이 헐뜯고, 비방했다며 라지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은 "더럽고 비열한 하이에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진짜 골칫거리는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절대다수의 언론"이라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동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을 개혁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오성운동의 간판스타인 알레산드로 디 바티스타(40) 전 의원 역시 라지 시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기자들을 "창녀와 싸구려 글을 내지르는 글쟁이"로 폄하했습니다.
좌파와 우파로 나뉜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싸잡아 비난하며 투명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오성운동은 2009년 창당 이래 주류 언론과 줄곧 갈등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집권 이후에는 언론에 대한 지원금 삭감 등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오성운동 대표 정치인들의 이 같은 발언에 당사자인 언론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자인 프랑코 비비아노는 12일 "디 마이오와 디 바티스타의 발언은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에게 정보를 알리려고 노력해온 이탈리아 기자들을 욕보이는 것"이라며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비아노 기자는 아울러 이탈리아 기자들을 규합해 이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탈리아 기자단체는 13일에는 수도 로마와 밀라노, 토리노, 피렌체, 제노바 등 주요 도시 60곳에서 오성운동 정치인들의 발언을 규탄하는 동시다발적 집회를 펼쳤습니다.
시위를 이끈 라차로 파파갈로 로마 언론인협회 회장은 "누군가 우리에게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지 지침을 내리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탈리아기자연맹(FNSI)의 라파엘레 로루소 사무총장은 "우리는 여론을 호도할 목적으로 직업 기자들의 신뢰를 훼손하는 조직적인 행위에 직면해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유럽기자연맹(EFJ)의 안나 델 프레오 기자는 "디 마이오 부총리는 기자들을 모욕한 뒤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에 광고를 하지 말 것을 거대 기업들에게 주문했다"고 폭로하며 "이 정부는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 등 이탈리아 정계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도 디 마이오 부총리 등의 언사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12일 로마 퀴리날레 대통령궁을 방문한 이탈리아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동의하지 않고, 심지어 틀렸다고 생각되는 뉴스나 의견도 때로는 신문에서 접할 수 있지만, 이런 뉴스들도 타인의 생각과 견해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며 "이 같은 이유로 언론의 자유는 '커다란 가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자 출신인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은 "기자 경력이 자랑스럽다"며 "유럽 곳곳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려스러운 공격이 존재하지만, 언론의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역설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