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내고도 덜 받는 게 아니냐, 이러다 나중에 아예 못 받는 게 아니냐는 식의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사실 이번 공청회 발표안은 엄밀히 말해서 '확정된' 정부안은 아닙니다. 정부가 민간위원들이 주축인 자문단 3곳에 의뢰해 받은 일종의 연구용역보고서 같은 겁니다. 이 발표안을 토대로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최종안'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자문단 위원마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달랐다는 겁니다. 이견 차이는 심지어 공청회 발표안이 나오기 전까지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국민연금 강화론자 - 이 그룹은 전 국민의 노후 생활과 복지 안정이라는 국민연금 취지를 살리기 위해 연금 수준을 강화하자는 쪽입니다. 지금도 '용돈 연금'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 연금액을 더 깎고 보험료를 올리면 대체 어느 누가 국민연금을 신뢰하겠느냐는 겁니다.
② 기금 안정론자 - 이 그룹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쪽입니다. 비록 전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 부담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겁니다.
따져보면 이쪽 말도, 저쪽 말도 맞습니다. 두 그룹 간의 논쟁은 사실 국민연금 출범 초창기부터 존재했고, 1~4차 재정추계 때마다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지금도 두 그룹은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공청회 이후 국민연금을 강화하자는 그룹이 국민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4차 재정추계 그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 방향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이번 정부 자문단에 참여했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와 정해식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 공적연금 연구센터장이 나섰습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주장을 펼쳤을까요?
이들은 기금 안정화론자들이 '기금 고갈 프레임'을 강조하며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험료 인상을 위한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거죠.
이번에 4차 재정추계 위원으로 참여했던 정세은 교수는 "이번 국민연금 재정추계 과정에서 '재정건전화'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 교수는 기금 소진의 의미를 과장하고, 특히 70년 후의 기금 소진을 막기 위해 과도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지난 공청회에서 70년 이후인 2088년에 적립기금 1배를 유지하겠다는 재정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보험료 인상 등이 필요하다는 대책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정 교수는 그 어떤 경제학 석학도 70년 뒤를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한데도, 70년 후의 재정목표 달성을 위해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는 게 과연 적절하냐고 반문했습니다.
이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정해식 센터장은 '기금 고갈론'을 흑마법에 비유했습니다. 정 센터장은 자문단 내부에서 '기금을 고갈시켜선 안 된다'라는 믿음이 마치 흑마법처럼 작용했다며, 기금 고갈론에 치우치다 보면 빈곤 문제를 막기 위한 국민연금 취지가 종종 무색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70년 이후의 재정목표'를 기금 고갈론자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오류라고도 비판했습니다. 예측조차 불가능한 70년 뒤 목표를 내세워 연금을 깎고(소득대체율 인하) 보험료율 인상을 합리화하기보다, 그보다 짧은 30년의 재정목표를 세우고 실효적인 개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연금 강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금 고갈 문제에 대해선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요?
정세은 교수는 보험료를 올리는 대신 기금 부족분을 나라가 재정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자고 주장합니다. 정 교수는 추산 결과 2088년 국민연금 급여액 가운데 기금 수입 부족분은 GDP 대비 6.6%에 불과할 뿐이라며, 그 정도면 국가 재정으로 보충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2088년 예상 GDP는 총 11,816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그해 6.6%에 해당하는 780조 원을 국민 세금으로 채우면 문제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국가가 GDP 대비 6.6%의 비용을 내는 것은, 물론 절대로 적은 것은 아니지만 부담하지 못할 정도로 큰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정해식 센터장도 기금 소진 이후 정부 재정 투입 등을 통해 부과방식 비용률의 일부가 줄어들 수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기금이 바닥나면 보험료가 크게 오르겠지만 그때 세금으로 충당해 보험료율 인상폭을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정 센터장은 그밖에 연금 가입 자격 확대, 연금소득 상한 조정 등을 통해 기존에 보험료를 안 내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연금소득에 대해 과세하면 재정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부적인 면면은 다르지만, 미래의 기금 부족분을 그때 가서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자는 내용은 대체로 공통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금 부족분을 메우는 국민 세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바로 기금 안정론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입니다. 국민연금을 강화하겠다며 연금 지급액을 강화하는 대신 이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겠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도 비판합니다.
기금 안정론을 대변하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 불신 운운하며 오히려 국민연금을 강화한다면, 훗날 부메랑처럼 돌아올 보험료 인상 부담과 국민 세금 지원은 미래 세대 몫 아니냐"라고 반문합니다.
70년 장기 재정 목표가 허구라던 국민연금 강화론자들의 주장 역시 거꾸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독일 등은 이미 기금 소진으로 부과방식을 바꿨기에, 굳이 장기적인 재정추계를 하지 않고도 연금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겁니다. 그해 연금 수입이 적게 들어오면 국민들한테 묻지 않고도 연금 지급을 깎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독일과 같은 방식이 아니기에 장기적인 재정 추계가 필요하며, 특히 기대수명이 90세까지 늘어나는 추세에서 70년 뒤를 목표로 한 재정 추계는 당연하다는 겁니다.
윤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출발할 때부터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으로 설계된 만큼 지금부터라도 현 세대의 고통 분담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국민연금 강화와 기금 안정화, 과연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두 그룹 간의 설전은 어쩌면 국민연금이 사라지기 직전까지도 계속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