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연정이 난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으면서 대연정 붕괴를 전제로 한 갖가지 시나리오가 솔솔 나오고 있다.
오는 28∼2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난민 문제 합의가 어려운 기류로 흐르자, 대연정 붕괴 후 시나리오가 더욱 고개를 들고 있다.
EU 정상회의는 난민 문제로 사면초가에 빠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마지막 동아줄로 인식돼왔다.
난민 강경책을 내세운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메르켈 총리에게 EU 정상회의까지 말미를 준 상황이다.
기독사회당 대표인 제호퍼 장관은 EU 회원국에 이미 망명신청이 된 난민의 입국을 불허하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메르켈 총리는 EU 공동의 난민정책이 필요하다며 맞서는 형국이다.
제호퍼 장관이 EU 정상회의 후 정책 추진을 밀어붙일 경우 메르켈 총리는 제호퍼 장관을 경질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 붕괴를 의미한다.
기사당이 이탈할 경우 연방 하원에서 대연정의 과반 의석이 무너진다.
바이에른 주(州)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당은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의 자매정당으로, 1946년 창당 이후 기민당과 제휴해왔고 1969년부터 연방하원에서 단일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일간 빌트는 26일 대연정 붕괴 시 기민당과 사민당 간의 소수 정부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내각이 추진하는 법안의 안정적인 의회 통과를 위해서는 일부 야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맞춰야 하는 애로가 따른다.
법안 통과가 여의치 않아 정국 불안이 가중될 경우 자연스럽게 조기 총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빌트는 과반인 야당이 힘을 모아 메르켈 총리를 끌어내리고 새로 총리를 선출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기사당과 자유민주당, 녹색당, 좌파당은 현재 제1야당인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있어 이런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기사당이 이탈한 자리에 녹색당이나 자민당이 대신 들어가는 시나리오도 주목을 받고 있다.
녹색당은 애초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승리한 뒤 기민·기사 연합, 자민당과 연정 협상에 참여했었다.
당시 녹색당은 자민당과 달리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기민·기사 연합과는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공동원내대표가 공영방송 ARD에서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정책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같이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편 기민당과 기사당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위태로운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기민당의 폴커 카우더 원내대표는 "우리는 70년간 이룬 것이 자랑스럽다"라며 "축구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에서) 95분에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넣은 것처럼 우리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빌트가 전했다.
이날 밤 열리는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 간에 열리는 지도부 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난민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가 불가능하다면서 EU 회원국 간의 양자 합의가 계속 이뤄지는 게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설득할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라며 양자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