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와 관련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허리띠를 졸라매 지출을 줄이면 국정 제1과제인 노동시장 개혁의 정당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으면 유럽연합(EU)의 프랑스에 대한 신뢰가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일 프랑스 회계감사원(Cour des Comptes)에 따르면, 프랑스의 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EU가 제시한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를 넘어서는 3.2%로 예상된다.
회계감사원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프랑스의 공공재정이 열악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EU의 협약을 지키려면 당장 올해 대규모 재정지출 감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EU의 안정성장협약은 회원국들에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안쪽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마크롱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협약을 준수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프랑스는 2007년부터 급증하는 지출을 통제하지 못해 국가총부채가 GDP의 96%에 육박하는 등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 평균보다 7% 포인트가 높고, 독일보다는 30% 포인트 이상 높다.
마크롱이 재정적자 감축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은 프랑스가 EU를 주도하려면 EU 회원국들의 프랑스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수라고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 누적이 EU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EU 개혁과 결속력 강화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 역시 꾸준히 프랑스의 재정적자 감축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가 국정 제1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마크롱은 노동 유연화 추진에 대한 반대급부로 실업자에 대한 직업교육 확대와 실업급여 대상에 자영업자 포함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내세웠는데 모두 대규모 재정이 요구되는 사업들이다.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노동개혁의 '유연화' 부분만 강조되고 '안전망'은 사라지게 돼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오도 증권사의 브뤼노 카발리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노동개혁의 의지와 정치적 수단모두 갖고 있지만, 재정적자라는 암초가 있다"면서 "마크롱은 경제가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취임했지만, 재정적 제약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재정적자가 '딜레마'라는 것을 잘 인식한 마크롱이 이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매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급증을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기류다.
디디에 미고 회계감사원장은 올랑드 정부가 재정적자를 작년 GDP 대비 3.4%에서 올해 2.8%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데 대해 "전 정부가 임기 말 재정지출을 과소평가해 EU에 솔직하지 않은 목표치를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일단 대규모 재정투입은 내년 이후의 일이라고 보고 EU와 독일에 안심하라는 사인부터 보냈다.
필리프 총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올해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관리하겠다면서 "증세 없이 예산 절감으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총리가 올해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재정적자 문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계감사원 전망으로는 내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재정지출을 동결해야 겨우 GDP의 3% 이내로 적자 폭을 관리할 수 있는 반면에 실업급여 확대 등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공약들은 당장 내년에 시행이 예정돼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