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부산 선적 근해대형선망 어선인 K(278t·승선원 10명)호의 아찔한 사고 순간이 해경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선침몰과 거의 동시에 승선원들의 탈출이 진행돼 조금만 늦었더라면 거센 파도에 모두 휩쓸려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K호가 서귀포항을 출항한 시점부터 침몰할 때까지 상황과 승선원들의 대처 모습을 재구성한다.
운반선인 K호는 19일 오전 1시께 서귀포항에서 같은 선단 어선들이 잡은 고등어 등을 가득 실어 옮겼다.
K호에 적재된 어획물은 24t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 기상이 곧 나빠진다는 예보에 출항하지 않은 어선도 있었으나 하루라도 빨리 어획물을 목적지로 옮겨야 하는 운반선의 특성 때문인지 K호는 어둠 속에서 부산항으로 가려고 닻을 올렸다.
거문도를 좌표에 잡고 제주시 우도를 막 지나치던 20일 오전부터 해상의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K호 승선원은 해경 조사에서 "높은 파도에 바닷물이 계속 배 앞으로 유입돼 선수 쪽에 있는 어창에 물이 들어차자 배가 앞으로 고꾸라진 위험한 형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해역에는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물결이 4∼5m 높이로 매우 높게 일고 바람도 초속 18∼21m로 강하게 불었다.
선원들은 수작업으로 긴급히 바닷물을 퍼냈으나 파도로 유입되는 양이 더 많아 역부족이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자 선장 김모(59·부산)씨는 더는 버티기는 힘들 것이란 위기를 직감, 비상벨을 울리며 "배를 포기하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그 직후 김씨는 SSB(무선통신)로 급히 구조 신호도 보냈다.
승선원 9명이 갑판으로 나와 구명동의를 갖춰 입는 동안 김씨는 배에 마련된 구호장비인 구명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배는 점차 가라앉는데도 구명정은 제대로 부풀어 오르지 않아 바로 탈 수 없었다.
선원 일부는 어쩔 수 없이 거센 파도가 이는 바다에 뛰어내리기도 했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구명정이 완전히 부풀어 오르자 김씨가 먼저 타 다른 선원들을 차례로 오르도록 도왔다.
바다에 빠진 선원들도 구명정으로 구조했다.
한 승선원은 "배가 거의 침몰하는 상황에서 동시에 구명정에 가까스로 옮겨탔다"고 말했다.
김씨 등이 구조 신호를 보내고 탈출을 시작한 6분 뒤인 오후 1시 35분께 K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끊겨 해경도 탈출과 동시에 배가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했다.
구명정은 선원들의 생사를 갈랐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승선원 10명 가운데 숨진 선원 김모(57·부산)씨와 실종 상태인 조모(66·부산)씨는 안타깝게도 구명정에 올라타지 못했다.
구명정에 탄 김씨 등 8명도 구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높은 파도에 구명정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 서로를 붙잡고 1시간가량을 버텨서야 가까스로 구조의 손길이 닿았다.
오후 2시 29분께 수색에 동참한 어선이 이들을 발견, 구조했다.
생존선원들은 해경 함정에 옮겨타서도 실종된 동료의 야간 수색에 동참하다가 고열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예정보다 다소 이르게 제주항으로 들어왔다.
K호의 선사 측 관계자는 "어선이 크고 작건 상관없이 기상이 나쁘면 거대한 파도에 맥없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침착한 대처로 대부분 인명을 구조하게 됐고 실종자도 어서 빨리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해경은 K호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도 북동쪽 40㎞ 해상에 함정 4척과 어선 2척, 항공기 2대를 동원해 실종된 조씨를 이틀째 찾고 있다.
생존선원들을 불러 사고 원인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