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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소통하는 방식

-소통 과정에 드러난 권력 관계

[취재파일]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소통하는 방식
지난 7월, 국회 예산특위 소위원회. 한 의원이 묻습니다.
A 의원 : 잠깐만, 이 관련 예산은 얼마 정도 되지요?

정부가 답합니다.

B 차관 : 한 300억 정도 소요되고요. …… 추경에 반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이게 백신이 이렇게 딱 만들어졌다가 바로 공급되는 그런 게 아니고요, …… 추경 때 반영이 된다 하더라도 연도 중에 접종하기는 현실적으로는 조금 시차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차관은 매우 조심스럽고, 예의 바릅니다. 의원들은 이후 사실 관계를 묻기 시작합니다. 의원들은 아무래도 예산을 반영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C의원 : 아이들 건강 관리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인지, 어떤 종류인가요, 이게?

차관은 애써 돌려 말합니다. 보자 하니, 예산을 반영하기 싫은 것 같습니다.

B 차관 : 너무 과다한 것은 아닌지 이런 것들을 점검을 해서 한국인에 맞는 예방접종을 거기서 선정을 하고 그다음에 연차적으로 무료 예산 사업을 확보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진 정갈한 마무리.

C 의원 : 계속 그런 점에 대해서 국민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B 차관 : 예, 잘 알겠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당장 올해부터 만 5세 미만 영유아 210만 명에게 독감 무료 예방 접종을 추진하는 예산을 반영하길 원했습니다. 예상대로 국회의원 뜻대로 됐습니다. 예방 접종 예산 280억 원이 추경 안에 예비비 항목으로 포함됐고, 본회의를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남모를 속병을 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D 사무관 : 올해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해서 백신 생산이 끝났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무료로 해준다면 수요가 폭증할 게 뻔해요. 국가가 무료로 해준다고 그러면 다 접종주사를 맞잖아요. 안 맞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국회가 이렇게 속사정도 모르고 통과시켜버리니… 사실, 국회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요. “야, 제대로 알아보고 해야지 왜 이랬어?” 그러고 국정감사 때 공무원들 혼내면 끝이에요. 욕은 정부가 먹는 거고요.

정부는 국회에 백신 부족 가능성을 여러 차례 상임위에도 알렸고, 예결위에도 의사를 표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이걸 묵과하고 예비비로 편성해 통과시키면서 백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겁니다. 못하면 결국 자신들이 욕을 먹는다는 거죠.

이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로 할 말이야 많겠죠. 이 대목에서 주목하고 싶은 건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어떻게 소통하는가, 그리고 그 소통 방식이 정책 결정을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입니다.

정부의 화법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백신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백신 확보에) 현실적으로 시차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란 식으로 돌려 말합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공무원들은 ‘~할 것 같다’, ‘~할 것으로 보인다’ 혹은 ‘조금’, ‘약간은’ 이란 식의 애매한 표현을 유독 많이 씁니다. 단정적인 표현은 가능한 피하려고 하죠.

왜 그럴까요. 우리는 손윗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죠. “사장님! 배고파요!”라는 말과 “사장님, 제가 지금 공복인 것 같아서요.”, 이 두 표현 중에 뭐가 더 공손해 보이나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안 됩니다.”라는 말보다는 “죄송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 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틀렸네요.”란 표현을 “죄송하지만, 그렇게 접근하시는 게 꼭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에둘러 말할 때가 많습니다. 경어는 이렇게 추상적이고 모호합니다.

만일 공무원이 명확한 표현을 썼다면 어땠을까요. “백신 생산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정색하고 말했다면요. 그러면 분명 국회의원은 “왜 불가능하죠?”, “대체 일을 어떻게 하기에 백신 확보조차 못하는 겁니까?” 이렇게 불쾌감을 나타낼지 모릅니다. 공무원 말이 맞는 걸로 드러나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공격할 게 없어졌다고 칩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딴 걸 물고 늘어지겠죠. “대체 보고를 왜 이딴 식으로 합니까?” 이런 식으로요. ‘태도의 문제’로 찍히면 그때부터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그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태도 문제를 지렛대삼아 꼬투리 잡는 것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의 심기를 건들면 안 되는 겁니다.

화법을 통해 우리는 국회의원과 공무원의 권력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권력이 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요. 이 자리에서 단순히, 국회의원의 고압적인 자세를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권력 불균형이 소통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한계는 우리 일상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부장님한테, 사장님한테,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누구나 민주적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하지만, 권력의 열세 때문에, 쉽게 말해 태도의 문제로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의 화법은 위축되고 애매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의’와 ‘겸손’이란 말로 에둘러 수식했던 거겠죠. 제 후배도 저한테 그렇게 예의 바르게 말하더군요.

결국은 조직 손해고, 국가 손해 아닐까요. 소통 과정에서 표현의 명확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건 메시지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고, 의사 결정에 오판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니까요. 이번 독감 주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보다 명확히 표현했더라면, 본질적으로 국회와 정부가 동등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런 혼선이 있었을까요. 혼선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국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권력이 소통을 방해하고, 이게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여러 사례를 보면서, 우리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위계 의식이 마냥 미풍양속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큰 권력의 문제 말고도, 이 때문에 파생되는 우리 안의 작은 권력의 문제도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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