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는 2008년부터 세 번 연속 민주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랐습니다. 가장 최근인 4년 전 남편이 재선에 도전할 때 연설보다 이번 힐러리 찬조연설은 좀 더 톤이 강했습니다. 길이는 4년전 25분에서 이번엔 14분으로 줄었지만, 또 하나의 명연설로 기록될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내건 대선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대놓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이 나라가 위대하지 않다고, 그래서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누구도 말하지 못하게 하자. 지금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마주하게 되는 이슈는 흑백이 아니며 140글자로 요약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민감하거나 남을 혹평하려는 성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이고 신중하며 견문이 있어야 한다”며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연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이번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오는 11월에 우리가 투표소에 가서 결정하는 것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누가 앞으로 4년이나 8년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형성할 권력을 갖게 될지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힐러리는 "압력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고, 내 딸들이나 다른 어린이들을 위한 대통령감"이라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힐러리를 내 친구라고도 표현했습니다. 8년 전 남편과 사활을 건 대결을 벌인 경쟁자였던 그녀를 친구라고 표현하며 왜 자기가 그녀를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했습니다. “8년 전 힐러리가 경선에서 패했을 때 그녀는 화를 내거나 환멸에 빠지지 않았고, 정말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실망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힐러리의 대선슬로건 ‘함께 하면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와 힐러리 지지자들이 쓰는 ‘나는 그녀의 편’(I'm with her)이란 단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미셸이 찬조연설로 나섰던 첫날 민주당 전당대회장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강성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붙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당대회장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대회장 안에서는 힐러리 이름이 나올때마다 한동안 야유가 터져나와 찬조연설에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셸의 연설을 들은 양쪽 지지자들은 너나할 것없이 그녀를 연호하고 그녀의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흔들고 환호했습니다.
힐러리는 여성차별을 상징하는 ‘유리천장’을 깬 첫 미국의 주요정당 여성대선후보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힐러리가 아니라 미셸이었다면 유리천장보다 훨씬 두꺼운 장벽을 깬 인물이 됐을 것이고, 또 지금의 힐러리보다 훨씬 수월하게 대선을 치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부부가 연달아 대통령을 하는 것은 독재국가가 아닌한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지나 혹여나 미셸이 첫 여성 흑인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미국 역사에 더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