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축사 노예' 사건의 가해자인 농장주가 지적 장애로 판단력이 흐린 '만득이' 고모(47)씨 존재를 의도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김모(68)씨 부부는 1997년 여름 소 중개업자의 손에 이끌려 온 고모(47·지적 장애 2급)씨를 19년간 붙잡아두고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한가족처럼 지냈고, 감금은 없었다"며 "집이나 신원 확인을 하지 않고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이후 드러난 정황이나 증언은 고씨가 김씨 농장으로 오게 된 경위부터 19년간 강제노역을 하며 머문 과정이 석연치 않습니다.
김씨는 고씨를 데려온 소 중개인에게 사례금을 건넸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고씨를 두고 돈거래를 했다는 뜻이고, 고씨가 자발적으로 김씨 농장을 찾아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 고씨는 김씨 농장에 오기 전 천안의 한 양돈농장에서 자신을 자식처럼 여기는 농장주에게 일을 배우며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소 중개인이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져 고씨가 김씨 농장에 흘러든 상황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김씨는 "한가족처럼 지냈다"고 주장하지만, 고씨는 2평 남짓한 창고 옆 쪽방에서 지내며 100여 마리의 소들을 돌보는 중노동에 19년 동안 내몰렸습니다.
1985년 서울에서 낙향할 당시 5마리에 불과했던 김씨 농장의 소가 100마리까지 불어나면서 고씨의 일도 당연히 많아졌습니다.
마을에서 수십억 원대 부자로 통하는 김씨 부부는 고씨 덕에 한 푼의 품삯도 들이지 않고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고씨의 신원을 확인하거나,집을 찾아주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씨는 서울의 명문대 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30여년 전 이곳에 터를 잡고 축산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시골 필부가 아닌 명문대 출신의 그가 뜻만 있었다면 고씨 집을 찾아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씨가 자신의 집이 어디였는지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축사 주변의 한 주민은 "만득이가 마을버스 정류장에 앉아있길래 집에 가고 싶어서 그러느냐면서 농담처럼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오송, 오송'이라고 대답했다"며 "김씨 부부가 (만득이를)호남에서 데리고 왔다고 해서 실언을 하나보다 했는데 자기 집이 어디인지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실제 고씨의 어머니(77)와 누나(51)가 있는 집은 청주시 흥덕구 오송이었습니다.
19년을 함께 살아 고씨의 고향이 오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김씨 부부가 마을 주민들에게 호남에서 데려왔다고 했다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김씨 부부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축사에 찾아가 고씨와 어떤 관계인지를 묻자 '사촌동생'이라고 답했고, 이어 '먼 친척'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일이 고된 데다 파리가 날리고 악취가 진동하는 가축 사육을 하는 축산농들의 가장 큰 애로는 인부를 구하는 일로, 외국인 노동자들조차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고씨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학대한 의혹이 있는 김씨 부부에게 장애인복지법 위반 및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적용, 조만간 사법처리할 방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