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8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결합에 대해 최종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유료방송시장과 이동통신 시장에서 독과점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양사 간 합병으로 지역 유료방송시장 23곳 중 21곳에서 요금 인상 등 독·과점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알뜰폰 시장의 성장으로 이동통신시장이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알뜰폰 사업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 간 합병은 이동통신 시장 전체의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유료방송 시장은 지역시장"…시장획정 근거는 유료방송시장의 독·과점 폐해
문제는 공정위 심사 과정에서 이미 논란의 중심이었다.
시장 획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쟁 제한성에 대한 분석 결과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사는 유료방송 시장에 대한 경쟁 제한성을 분석할 때 전국을 단위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결국 지역시장을 단위로 경쟁 제한성을 분석했다.
공정위는 지역시장 단위로 분석을 진행한 이유로 현재 유료방송 시장이 지역마다 요금도 다르고 서비스도 지역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CJ헬로비전의 경우 경기도 의정부(점유율 15.6%) 지역의 디지털TV 서비스 요금은 8천원이지만 경기도 부천·김포(점유율 53.1%) 지역은 같은 서비스가 1만2천원이다.
공정위는 양사가 제출한 자료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요금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IPTV의 경우 사은품·리베이트를 감안한 실질요금이 지열별로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와 미국·유럽연합(EU) 등의 방송사업자 간 기업결합 심사에서도 지역별로 시장을 획정했다고 강조했다.
지역 시장을 기준으로 시장을 획정한 뒤 경쟁 제한성 평가를 진행한 결과 23곳 시장 중 2곳을 제외한 21곳에서 시장 점유율 1위 사업자가 돼 경쟁제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서울 양천구 등 16개 지역은 시장점유율 합계 50% 이상, 2위 사업자와의 차이가 합병 점유율의 25% 이상으로 나타나 공정거래법상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기업결합은 서로 경쟁 대상인 케이블TV와 IPTV인 만큼 양사가 합병해 CJ헬로비전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요금 인상 가능성도 큰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실제로 경기도 부천·김포, 경북 영주·영천·경산(점유율 62.4%) 등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타지역보다 서비스 요금이 3천∼4천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UPP(Upward Pricing Pressure) 방식으로 방송요금 인상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기업결합 이후 가격 인상 압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이동통신 시장 도·소매 모두 장악…요금 인상 불가피
공정위는 양사 간 합병으로 이동통신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최근 성장하는 알뜰폰 시장이 이동통신 시장의 가격 인상 요인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이번 기업결합은 이동통신 소매시장뿐만 아니라 알뜰폰 망공급 시장 등 도매시장의 경쟁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상 결합 이후 당사를 포함해 상위 3사의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고 결합당사자가 1위 회사이며 2위 사업자의 차이가 결합당사자 점유율 합계의 25% 이상이면 경쟁 제한성의 추정요건에 해당한다.
양사가 합병하면 이동통신 시장의 점유율은 47.7%(SK텔레콤 및 계열사 46.2%, CJ헬로비전 1.5%)에 달해 공정거래법의 경쟁제한 추정요건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공정위는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이 공격적인 경쟁전략으로 기존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독행기업'에 해당한다고 봤다.
CJ헬로비전이 알뜰폰 최초로 LTE 서비스를 도입한 점, 국내 최저 LTE 요금제·반값-무약정 LTE 유심 요금제 등 혁신적 요금제를 시행한 점, 알뜰폰 최초로 아이폰5를 판매하는 등 경쟁력 제고에 노력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즉 CJ헬로비전이 경쟁자인 SK텔레콤에 인수되면 알뜰폰 도입으로 촉발된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와 요금 인하 경쟁에 부정적인 효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양사 간 합병으로 알뜰폰 망 공급 시장에서도 정상적인 경쟁시스템이 훼손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양사가 합병하면 합병사는 CJ헬로비전 14.24%, SK텔링크 14.21%를 더해 총 28.45%의 알뜰폰 가입자를 확보하게 된다.
CJ헬로비전이 우량고객이 많기 때문에 서비스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총 55.3%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공정위는 분석했다.
공정위는 SK텔레콤이 알뜰폰과의 경쟁으로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익 저하를 막기 위해 도매시장에서 경쟁사업자를 봉쇄할 유인이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지난해 양사 간 기업결합 계약 이후 6개월간 CJ헬로비전의 알뜰폰 가입 자 중 SK텔레콤 망 가입자 수는 9천600여명 증가했지만 KT 망 가입자 수는 1만3천여명 감소했다.
◇ 지금까지 불허 결정은 단 8번…이례적 결정
공정위는 통상 기업결합에 대한 경쟁 제한성 검토 과정에서 경쟁시스템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를 내놓을 뿐 불허와 같은 극단적인 결정은 잘 내리지 않는다.
다만 시정조치만으로 경쟁 제한성을 완화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이례적으로 주식취득 금지나 주식 전량 매각 등 사실상 불허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즉 이번 기업결합 심사를 통해 분석된 독과점 폐해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컸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공정위가 기업결합 신고를 최종 불허한 사례는 총 8건에 불과하다.
공정위가 매년 500여 건의 기업결합 심사를 하고 이중 상당수는 아무런 경쟁 제한성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숫자다.
동양화학공업의 한국과산화공업 인수(1982년), 송원산업의 대한정밀화학 인수(1982년), 동양나이론의 한국카프로락탐 인수(1996년), 무학의 대선주조 인수(2003년),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2004년), 동양제철화학의 콜럼비안케미컬즈컴퍼니 인수(2006년), 오웬스코닝의 상고방베트로텍스 인수(2007년), 에실로의 대명광학 인수(2014년) 등이다.
호텔롯데의 파라다이스글로벌 면세점 인수(2009년)와 호주 철광석 업체 BHP빌리턴과 리오틴토의 합작회사 설립(2010년) 등 2건은 공정위 또는 각국 경쟁 당국이 불허 방침을 시사하자 인수·합병 기업 측에서 기업결합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신영선 사무처장은 "이번 기업결합은 경쟁 제한성이 혼재돼 행태적 조치나 일부 자산 매각으로 이들을 모두 치유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권역을 모두 매각시킬 경우 사실상 금지와 다를 바 없으며 적절한 매수자를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