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 민생 현장 시찰은 무엇보다 중요한 이벤트죠. 특히,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서민 행보는 대중 지도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되는데요, 얼마 전 중국에서 리커창 총리가 물가 관리 실태를 직접 챙겨보기 위해 쓰촨성 청두 시내에 있는 한 시장을 찾았다가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습니다. 임상범 특파원의 취재파일입니다.
중국에서 총리라는 자리는 한 가정의 어머니와도 같아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색 바랜 점퍼에 낡은 운동화 차림으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이재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경제 분야를 주도하는 것도 총리인 만큼 국내외 경제 상황 변화나 새로운 경제 정책의 시행에 맞춰 시장이나 상점을 순시하며 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총리의 업무입니다.
그런데 리커창 총리가 지난 4월 말 시장을 돌며 웃는 얼굴로 한 정육점 주인에게 말을 건네자 의외의 뚱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장사가 잘 되냐는 질문에 평소에는 잘 되는데 오늘은 한 근도 못 팔았다는 대답을 들은 겁니다. 왜냐고 묻자, 정육점 주인은 총리 당신이 오는 바람에 손님들이 시장 안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머쓱해진 리 총리는 그렇다면 자신이 고기를 사겠노라고 제안했지만, 주인은 그마저도 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총리 당신이 오는 바람에 고기 자르는 칼까지 죄다 걷어갔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한마디로 권력 서열 2위인 총리가 시장에 뜨자 경호에 비상이 걸린 공안 당국이 미리 손을 써서 주인은 하루종일 고기는 한 근도 못 팔고 쇼윈도의 마네킹 신세가 됐던 겁니다.
물론, 이 한 편의 블랙 코미디는 현지 언론에 전혀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리 총리가 부지런히 시장을 누비며 상인들을 격려하고 애로사항에 귀를 기울였다는 판에 박힌 기사만 나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날의 해프닝은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다음 날 리 총리가 장소를 옮겨 과일 시장에 나타나자 누리꾼들은 또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과일에 붙어있는 가격표가 동그라미 하나가 빠진 것처럼 말도 안 되게 쌌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의 분노에 시장 측은 즉각 성명까지 발표하며 사진이 흐릿하게 찍혀서 오해를 불러온 거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곧장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하루 전날 벌어진 정육점 사건에 따른 학습 효과 때문에 총리가 오기 전 공안들이 실제 상인들을 다 몰아내고 대신 지방정부 직원들을 가게에 세워 마치 상인인 것처럼 연기를 시켰던 거라는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쇼잉의 전말을 총리가 미리 알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리커창의 이번 쓰촨 민생 투어는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며 엉망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과도한 의전과 연출이 말썽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지난 2008년 쓰촨성에 강진이 발생했을 때도 지역 공무원들이 당시 후진타오 주석을 맞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균열이 생긴 열차 승강장에 붉은 양탄자를 깔아놨다가 이를 알아챈 후 주석이 승무원에게 기차를 더 전진시키도록 한 뒤 양탄자가 없는 곳에서 하차하면서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를 불상사를 가까스로 피해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 가운데도 일선 행정 현장과 접촉하려다 예상치 못한 망신을 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죠.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려는 마음과 행동은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정성이 담보될 때 비로소 큰 울림이 생겨나는 법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월드리포트] "당신 땜에 하루 장사 종쳤수!!" 서민 총리의 봉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