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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소옆에 '지뢰 무덤'…아들은 지뢰피해자 "한숨뿐"

"아버지 산소 옆에 내 몸을 망가뜨린 대전차 지뢰와 같은 각종 지뢰가 가득한데…"

강원 철원군의 지뢰피해자인 김정호(63) 씨는 선산의 아버지 산소를 찾을 때마다 몸이 오싹 오그라든다.

아버지 산소 옆에 자신의 한쪽 손과 눈을 빼앗아간 대전차 지뢰 등이 묻힌 '지뢰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북한 땅이 바로 보이는 최전방지역 야산에 아버지의 산소를 만들고 나서 지뢰 무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형님, 산소 옆에 지뢰가 가득해요. 아마 트럭으로 몇 차 실어다 부었을 겁니다"

지인은 1970년대 농경지를 개간하던 사람들이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를 캐서 이곳에 묻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북한과 평지로 이어진 철원평야에서 야산은 전략적인 고지나 다름없다 보니 당국은 대전차 지뢰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대인지뢰와 발목 지뢰를 빼곡하게 매설했다.

가난 때문에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이런 지뢰를 몰래 캐내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 씨는 지뢰가 많이 묻혀 있다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우려는 현실화됐다.

동생뻘 지인이 알려준 곳에서는 1990년대 실제로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개간 작업을 하던 불도저가 대전차 지뢰를 밟는 바람에 산산이 조각나고, 불도저 조종사는 숨졌다.

이 지뢰 무덤 주변은 각종 잡목이 우거져 요즘은 지뢰가 묻혀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지뢰 무덤 옆으로는 울타리나 철조망, 지뢰 매설 표시조차 없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아버지, 언젠가 지뢰를 없애 드리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산소를 찾을 때마다 큰절을 올리면서 이렇게 약속하지만 지킬 수 있을지는 자신 없다.

지뢰 폭발사고로 받은 상처를 안고 홀로 어렵게 사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64년 4월 말 등굣길에 친구 2명과 마을의 야산에 올라갔다가 이상한 쇠붙이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못처럼 생긴 부위를 돌로 두드리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손목이 날아가고 오른쪽 눈까지 잃었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보다 7㎝ 짧고 휘어지는 등 온몸이 일순간에 망가져 버렸다.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군인들이 지뢰 사고를 당한 어린이를 포댓자루에 넣어 병원으로 급하게 옮겼다.

당시는 당국이 지뢰 위험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그는 퇴원하고 나서야 폭발한 게 대전차 지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요즘도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다.

장애 2등급을 받은 김 씨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산을 오르내리며 몸을 단련해 철원군 태권도 선수로 출전하고 가정까지 꾸렸다.

하지만 지뢰 사고로 얻은 남편의 장애를 힘들어하던 아내는 집을 나가고, 홀로 키웠던 두 딸은 31살과 29살에 각각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지뢰 사고로 가정은 완전히 해체되고, 아버지는 죽어서도 지뢰 무덤 곁을 떠나지 못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김 씨는 "아버지 산소 옆의 지뢰 무덤을 없애야 하는데 내 몸도 지뢰로 망가진 처지여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군인조차 여기에 지뢰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 장병이나 심마니들이 다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김 씨의 선산과 같은 곳은 군 당국의 지뢰 매설 통계에 잡혀 있지 않아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철원평야에는 미군이 공중에서 지뢰를 살포한 지역도 농경지 옆에 여러 곳 있다.

주민들은 효용 가치가 떨어진 재래식 지뢰를 제거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해도 "거기에는 지뢰를 매설하지 않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지구촌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가 지뢰를 캐내기로 발표했지만,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지뢰제거는 이처럼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지뢰 사고로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피해자는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뢰피해자 지원활동을 벌이는 사단법인 평화나눔회는 전국의 민간인 지뢰피해자만 450∼5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을이나 농경지 주변에 매설된 각종 지뢰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노리는데 지뢰 제거작업은 '거북이걸음'이다.

우리 정부가 밝힌 비무장지대와 인근 민간인 출입통제선 일대에 매설된 지뢰는 100만 발이다.

합동참모본부는 1998년 '지뢰제거작전'을 시작해 2014년까지 제거한 지뢰는 6만9천여 발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휴전선 인근 주민이나 지뢰피해자 지원 단체는 당국이 1년 동안 제거하는 지뢰는 사실상 500여 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철원의 한 주민은 "외국에서 지뢰를 제거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언제쯤 농지 주변의 지뢰라도 제거하는 날이 올지 한숨만 나온다"면서 "외국의 지뢰제거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지뢰피해자가 한 명도 없다'고 발뺌하는 당국의 관계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평화나눔회는 현재 지뢰 매설 지역 중 80%는 군사 목적상 소용없는 미확인 지뢰 지역인 데다 매설한 지 오래돼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인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곳부터 우선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평화나눔회를 이끄는 연세대 조재국 교수는 "많은 군인과 장비를 투입하지만, 지뢰제거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1년에 500발 정도씩 제거하면 한반도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 2천 년이 걸린다"고 우려했다.

이어 "매설한 지뢰 중 80%는 미확인 지뢰 지역으로 군사 목적상 소용없는데 당국은 북한과 대치하는 상태여서 필요하다고 호도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우선 매설 지뢰 실태를 정밀히 조사하고 마을이나 집, 학교 옆 등 지뢰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곳부터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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