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에 감겨 과일상자 한가득 담긴 돈뭉치, 이름이 줄줄이 적힌 장부, 상대 후보자에 대한 비방·흑색선전….
흔히 '선거 범죄' 하면 떠오르는 고전적 장면들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선거 범죄의 풍경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방법은 다양해졌습니다.
전과기록 바꿔치기, '대타' 내세우기 등 진화하는 선거사범에 맞서 검찰도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해 단속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전지검 공안부는 최근 수행비서의 '공직후보자 범죄경력회보서'와 '범죄수사경력회보서'를 위조해 자신의 것처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혐의(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 행사 등)로 총선 예비후보 이모씨를 구속기소했습니다.
음주운전 전과가 4회 있던 이씨는 이를 숨기려고 전과가 없는 수행비서의 서류를 자신의 것인양 위조했습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이씨는 전과가 없는 것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선관위가 서류 진위 확인을 검찰에 요청하면서 위조 사실이 발각됐습니다.
감정 결과 이씨는 기존 회보서의 명의인과 주민등록번호 부분을 지워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덧씌우는 수법으로 서류를 위조했습니다.
검찰은 이씨의 수행비서도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씨는 사건 이후 탈당하고 사퇴했습니다.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지난해 10월 한 지방 농협 조합장 당선자 정모 씨가 선거 당시 운동원 2명에게 각각 50만원씩 제공했다가 이후 조합원들에게 살포하라며 300만원을 더 준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정씨는 사촌동생이 한 일이라며 소위 '대타' 작전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범행을 부인했고, 설상가상 구속영장도 기각됐습니다.
정씨가 도주 경력이 있음에도 '자수해 도주 염려가 없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지만 수사기관의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선거운동원은 돈을 정씨가 아닌 정씨 사촌동생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촌동생 역시 자신이 범행을 했다고 강변했습니다.
검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을 통해 이들 세 사람의 통화 기록과 내역을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선거운동원이 정씨에게 돈 일부를 돌려준 정황을 확인해 결국 정씨를 구속했습니다.
지폐에 남은 공여자의 '흔적'이 발판이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경북의 한 농협조합장 선거에서 낙선한 정모씨는 A씨에게 14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이 A씨를 체포하고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안방에서 5만원권으로 현금 100만원과 조합원 수십명의 명단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습니다.
A씨는 줄곧 이 돈이 자신의 것이라고 잡아뗐지만 구속됐습니다.
경찰은 다른 조합원에게 살포된 사실을 확인한 40만원에만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나머지 100만원에 의문을 품고 지문감정을 의뢰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감정 결과 5만원권 20장 가운데 1장에서 정씨의 지문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정씨는 금품 제공자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구속됐던 A씨는 풀려나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지난해 안동지청도 한 농협 조합장의 선거 관련 금품제공 사건을 수사했는데, 돈을 건넨 사람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수사가 고비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5만원권 지폐 8장에서 DNA 정보를 추출한 결과 3장에서 공여자의 DNA가 검출됐습니다.
'돈을 주지 않았다.
만진 적도 없다'는 그의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대검 공안부는 지난달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선거사범을 엄중 단속하기로 했습니다.
대검 과학수사부도 담당 검사·수사관 화상회의를 열어 과학수사 기법을 공유하고 총선 대비 수사역량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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