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대선 취재를 몇 차례 경험한 바 있어 미국 대선은 어떻게 치러질까 궁금했습니다. 외신으로나 접했지 토론회 같은 긴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10월 14일 당일, 마치 영화라도 감상하는 기분으로 (연수 중인 관계로 아무런 취재 부담 없이) CNN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아! 정말 우리나라 대선 토론회와는 다르구나…
● 인신공격은 없다
CNN은 토론회 시작 전부터 대형 자막으로 토론회의 예상 이슈들을 추려 내보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이었습니다. (국무장관 시절, 공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것 아니냐는 게 골자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음에도 힐러리 자신도 이를 확실히 방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진행자의 질문이 나왔을 때 후보들 어느 누구도 힐러리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종종 보게 되는 그런 인신공격성 발언도 아니고 공무상 실수인 만큼 얼마든지 따지고 들만도 한 데 어느 누구도 이를 쟁점화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 개인의 스캔들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미국민들을 괴롭히는 일자리, 중산층 붕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자고 역설했습니다. 후보 간 이전투구의 장이 될 수도 있었던 사안을 자신들이 함께 몸담은 민주당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알리는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이후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우리 나라 대선 후보 토론회의 단골 메뉴인 후보 본인이나 가족에 대한 도덕성 논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후보들끼리 인신공격을 하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사회복지, 총기규제, 이민자 문제, 외교정책 같은 정책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을 뿐입니다.
● ‘초(秒) 재기’도 없다
미국 민주당 대선 토론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른바 ‘초 재기’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대선 토론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타이머입니다. 후보마다 발언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초과하면 진행자가 사정없이 잘라버립니다.
하지만 미국 민주당 토론회에 타이머는 없었습니다. 진행자가 주요 사안별로 질문하고 발언 기회를 주며 토론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정책적 쟁점이 생길 때면 후보 간 견해를 대비시켜 묻기도 했습니다.
토론 진행 동안 특정 후보, 그러니까 민주당 내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발언 기회가 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일부 후보는 발언 시간이 너무 적다며 항의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 ‘토론’이 ‘토론’이 되기 위한 조건
더욱 놀란 것은 토론회가 끝난 뒤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관련 뉴스들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주요 발언들을 기사화해 홈페이지에 올렸던 뉴욕타임스는 토론회 후 후보 간 득실 분석과 함께 누가 토론회에서 발언 시간을 많이 장악했는지 정리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일방적인 정견 발표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후보에게 공정한 시간이 보장돼야 할 겁니다. 하지만 토론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토론은 후보자들 간의 경쟁입니다. 누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 하는 정치의 장입니다. 토론을 주도하고 이슈를 끌고 가는 것도 정치인의 역량이라면 역량이니 말입니다.
● 토론 규칙 변경이 쉽지는 않지만…
제가 여기까지 말하면 다들 그러실 겁니다. “그럼 대선 토론회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이 제대로 하면 될 것 아니냐”라고요.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앞서 제가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냐’고 말씀드렸던 바로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 토론회가 유권자의 판단을 도울 수 있게 진행돼야 한다는 당위론과 토론에 참여한 후보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론 모두 충분한 근거가 있는 얘깁니다. 다만 제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실질적 토론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형평성에 방점을 둔 지금의 우리 대선 후보 토론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깊이 있는 내용이 나올 만하면 진행자가 자른다’거나 ‘지지율과 관계없이 모든 후보에게 동일한 시간을 부여하는 건 형평성을 가장한 불공평 아니냐’는 등의 불만이었습니다.
‘후보자 간 형평성’과 ‘유권자에 대한 보다 명확한 판단 근거의 제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까요? 결국, 유권자들이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느냐가 판단의 가장 큰 잣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