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사회주의지하당(NSU) 창설멤버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단체는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런 단체의 멤버를 지금껏 본 일도 없다. 그러나 (나의 동료였던) 문틀로스와 뵌하르트에 의해 희생된 이들과 모든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독일 사회 전체가 9일(현지시간) 한 40세 독일 여성의 입을 주목했다.
극우 신나치 테러조직 NSU의 마지막 생존자로 간주된 베아테 췌페가 이날 오전 뮌헨 고등법원 공판에서 변호인 마티아스 그라젤이 읽어내린 53쪽 분량의 진술서를 통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이날도 지난 재판 때처럼 웃는 모습으로 변호인들과 대화하며 짐짓 여유를 보였다.
췌페는 NSU 창설 같은 범죄단체 구성 등 검찰이 자신에게 제기한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지만, 경찰관 살해가 두 동료에 의한 것이며 총기 탈취가 목적이었다고 밝히는 등 일부 새로운 증언으로 관심을 모았다.
NSU는 2000∼2007년 터키계 8명, 그리스계 1명, 그리고 경찰관 1명 등 모두 1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희생자들이 이민자 배경을 가진 데다 오랜 기간 연쇄적으로 일어난 범행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극좌 적군파 테러가 준 충격만큼이나 독일 사회를 경악케 했다.
이번에 입을 연 췌페는 이들 살인과 테러조직 창설, 폭탄공격 2차례, 은행강도 15차례, 방화 등 혐의로 기소되고 나서 2013년 5월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이 혐의가 다 인정되면 그녀는 종신형을 살아야 한다.
췌페는 그러나 250차례 청문심리와 목격자 약 500명의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2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이 사건 전모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독일 사회가 이날 그녀의 발언에 안테나를 세운 이유다.
NSU의 실체는 2011년 11월 4일 튀링겐주에 있는 아이제나흐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은행강도 실패와, 직후 동반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시신 발견, 그리고 이 사건으로 지명수배된 췌페가 자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췌페는 그렇게 숨진 채 발견된 우베 문틀로스, 우베 뵌하르트와 함께 1998년부터 NSU를 만들어 범행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의심이다.
문틀로스와 뵌하르트는 당일 불에 타고 있는 캠핑카에서 사망한 상태로 경찰에 발견됐다.
이날로부터 나흘이 지나 췌페는 경찰에 자수했다.
이들 3인은 흔히 NSU 트리오로 묘사된다.
췌페는 이날 진술에서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을 라디오로 접한 날, 과거 이들 두 동료와 함께 살기도 했던 자신의 튀링겐주 츠비카우 아파트를 불 태운 뒤 나흘이 지나 자수했다고 주장했다.
방화는 숨진 두 동료의 희망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이 거처에 정주할 수 없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만 밝혔다.
췌페는 NSU의 첫 살해로 기록된 2000년 9월 9일의 뉘른베르크 터키계 꽃집 주인 살인의 경우 3개월 이후에 알게 됐다고 주장하는 등 모든 범행에 대해 계획 단계부터 알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고 사후에 인지했다는 논지를 폈다.
문틀로스와 19세 생일 때 처음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거나 사망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가족이었다고까지 말하면서 "이들의 열 차례 살인과 두 차례 폭탄테러의 동기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막지못한 데 대해 도덕적 죄의식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녀는 또 옛 동독의 예나에서 태어나 동독 변혁기 때 부모가 실직하는 바람에 돈이 없어 도둑질을 했다며 불우한 성장기를 회고하기도 했다.
췌페는 앞서 경찰에 자수할 당시 양말에 석유 흔적이 있었고, 불 타 버린 아파트에서 발견된 인터넷 기록과 가스통 때문에 살인과 방화공격 가담 의심을 받았지만 이번 방화 혐의 인정으로 이들 증거는 별로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유족 측은 그러나 범행 현장에서 췌페를 봤다는 목격자들의 전언이 있고 그녀가 자신이 지내온 아파트를 굳이 불 태운 것도 증거인멸의 목적 때문 아니겠느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난 재판 과정에선 특히, NSU 범죄가 내년 해산심판이 개시되는 극우 민족민주당(NPD)과도 연계되고 다른 28명이 동조했다거나 2천 명의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주장들이 나와 앞으로 입증돼야 할 대목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NSU에도 국내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 정보원 약 30명이 활동했다는 것은 일찍이 정치적으로 크게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유족 변호인 측은 한때 정보원 2명이 NSU 트리오를 체포할 방법을 상부에 보고했으나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거나, 헌법수호청이 2011년 11월 NSU 정보원 문서를 모두 파쇄기에 넣어버렸다고 말한다고 공영 도이체벨레는 보도했다.
이러한 정보원 문제 등 미궁에 빠질법한 이슈는 독일 연방하원(분데스탁)이 최근에 NSU 사건 조사위원회를 새롭게 꾸려서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분데스탁은 연방주 6곳도 함께 참여한 가운데 2012년 1월부터 2013년 8월까지 1차 조사위를 가동하고 나서 1천3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한편, 췌페와 함께 NSU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다른 4명에 대한 선고는 내년 중반께에야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독일 '新나치 연쇄살해' 마지막 생존자 침묵 깨고 "도덕적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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