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봉한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은 갑작스러운 통일 과정에서 동독 주민이 느끼는 자유와 혼란을 코믹하게 그립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데 이어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맥도날드가 들어옵니다.
동독 물품은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 동독 주민들은 2등 시민이 된 것 같은 씁쓸함을 느낍니다.
독일에서 개봉 당시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통일의 격변기를 되짚게 한 영화입니다.
서울에서 만난 슈테판 볼레(65) 동독박물관 연구소장도 "많은 동독 주민들이 통일 과정에서 느낀 점을 포착한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동독 출신 역사학자 볼레 소장이 몸담은 곳은 베를린의 동독박물관(DDR Museum)입니다.
동독 시절의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구현하고 과거 동독인의 삶이 독재정권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동독인의 일상은 서독인의 것과 얼마나 달랐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박물관입니다.
동독에서 자신과 같은 평범한 주민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꾸밈없이 재현하는 것이 역사학자인 볼레 소장의 관심사입니다.
그는 독일 통일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실업이었고 실업을 몰랐던 동독인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업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또 독일 통일의 밑거름은 지속적으로 이어진 민간 교류 덕분이었다면서 남북한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이 소련 붕괴에 맞물려 있던 반면 한반도 통일에는 힘이 강력해지는 중국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잊지않았습니다.
볼레 소장은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초청으로 방한, 13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아산정책연구원과 제주평화연구소 등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합니다.
다음은 볼레 소장과의 일문일답입니다.
-- 동독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 9년 전 세워진 작은 민간 박물관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지만 지금까지 방문자가 50만 명을 넘었다.
베를린 박물관 중에 인기 순위 9위다.
한국 방문객도 있다.
-- 통일 후 벌써 25년이 지났다.
지금도 동독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는.
▲ 통일 후 동독 독재정권 청산을 위해 비밀경찰인 슈타지 기밀문서 해제 위원회에 참여했다.
이 작업은 정말 핫이슈였다.
역사학자로서 슈타지 기밀에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었는데 이후 정치범과 수감생활 등이 공개적으로 논의됐지만 그것이 동독 주민의 삶 전부는 아니었다.
독재 치하에서도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차를 구입하는 동독 주민의 일상적인 삶이 있었던 것이다.
통일 이후 동독 주민에게는 자유롭지는 못했어도 사회안전망이 구비되고 모두에게 일자리가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일었다.
체제 전환기의 실망감이 '오스탈지아'(Ostalgia.
동쪽을 뜻하는 'Ost'와 향수를 뜻하는 'Nostalgia')로 나타난 것이다.
동독박물관으로 과거 동독 시절의 일상이 실제로 어땠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나.
동독 출신 방문자들의 반응은.
▲ 경제적 발전 덕분에 오스탈지아는 없어졌다.
동독 출신 방문객의 반응은 과거의 일과 거리를 두려는 것부터 정말 흥미진진하다는 것까지 다채롭다.
서독 출신 방문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 통일 후 25년간 분단은 얼마나 극복됐다고 보는가.
▲ 통일 직후 분단 극복에 25년도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기관 전망이 있었는데 내 자녀 세대에게는 동서독 구분이 의미가 없다.
사고방식(mentality) 통합은 완료됐다고 본다.
시골 지역에서는 과거의 생활양식이 남아있기는 해도 베를린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동서간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 통일 과정에서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
▲ 가장 큰 문제는 실업이었다.
동독에서는 일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고 실업이 뭔지 몰랐다.
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직장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은 새로운 경험이자 충격이었다.
통일 이후 동독의 당국과 기관, 공장, 대학에 서독 출신 상관들이 왔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을 강조했는데 나이가 많은 동독인들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 독일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남북한의 통일에 필요한 핵심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 동서독에는 오랜 기간의 평화로운 인적 교류가 있었다.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주민 교류가 지속됐다.
게다가 동독에서 서독의 TV를 보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동서독 화해의 핵심 배경이었다.
서독 신문과 책은 금지됐지만 언어가 같아서 정보가 쉽게 유입됐다.
통일은 길고 험난한 과정이지만 너무나 갑자기 온다.
동서독 격차에 비해 남북한 격차는 더욱 격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간의 인적 교류가 중요하고 북한과 대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은 동독에 비해 더욱 가혹한 공산정권이라는 점, 그리고 동독은 위기에 처한 구소련에 밀착해 있었던 데 비해 북한은 힘이 강력한 중국과 가까운 관계라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 최근 유럽의 난민위기로 독일로 밀려드는 난민이 급증했다.
독일 국민의 반응은 어떤가.
통일 과정의 사회통합 경험이 이번에도 작동할 수 있을까.
▲ 놀랍게도 독일 시민 대다수가 난민을 수용하자는 입장이다.
분위기는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받을 수는 없고 얼마나 이런 분위기가 지속할지는 모르겠다.
향후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민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닥친 새로운 문제이자 최대의 고비다.
(SBS 뉴미디어부)
"실업개념 없던 동독인, 통일 후 충격…한국도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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