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전설'의 여동생…그녀의 소원
1946년, 할머니는 난생 처음 오빠를 만났습니다. 세상일을 다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습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 환영받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오빠가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1948년, 해방된 독립 조국에서 할머니는 담을 넘어온 경찰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할머니는 여러 차례 물고문을 받았습니다.
오빠가 잠적했고 얼마 뒤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습니다.
할머니의 오빠는 영화 '암살'에 나왔던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었습니다.
6.25를 거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북으로 넘어간 약산을 제외한 다른 오빠 4명은 사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총살됐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오빠 김원봉에 대해서는 자녀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입을 닫고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입을 연 것은 2000년 무렵부터입니다.
[김학봉 / 김원봉 선생 막내동생·85세]
"친일파들이 들어와 가지고 결국 오빠를 북한 공산주의자로 몰아가지고 이래 하는구나 하는 걸 그때는 내가 알았고…"
2005년부터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북한 정권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김학봉 / 김원봉 선생 막내동생·85세]
"우리 오빠는 절대로 공산주의자는 아니고 민족주의자고…서훈을 받으면, 그리하면 내 한이 안 풀어지겠나."
김원봉은 북한으로 넘어간 뒤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분단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김원봉을 공식 인정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항일 운동 궤적과 월북 경위를 보면 김원봉을 공산주의자, 북한 정권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김원봉은 독립 운동 과정에서 공산당과 내전을 벌인 중국 국민당과 긴밀히 연계돼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에 필요하면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월북을 하게 된 것도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고,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후의 일입니다.
북한에 간 이후에도 남북의 이념대립을 지양하는 이른바 중립화 통일방안을 주장하다 김일성 눈밖에 나서 1958년 숙청됐습니다.
북한 정권은 김원봉을 국제 간첩으로 몰아 이후에도 복권하지 않았습니다.
김원봉을 '북한 정권 사람'이라고 한정하기는 어려운 이유입니다.
얼마 전인 지난 15일 한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우리 현대사는 일부 좌파세력이 주장하는 굴욕의 역사가 절대 아니란 게 증명됐습니다."
그러나 자랑스런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이나 굴욕의 역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굴욕의 역사를 억지로 부정하다 보면 친일했던 형사가 버젓이 해방된 정부의 경찰이 됐다는 사실도 외면해야 하고, 이런 경찰들이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다는 사실도 지워야 합니다.
체제 경쟁은 끝났습니다. 부끄러웠던 일은 부끄러웠다고 말할 때도 됐습니다.
과거를 인정한다고 우리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습니다.
진정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은 잊혀진 영웅들을 다시 기억하고 포용하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원문: 문준모 기자 취재파일, 기획: 임찬종, 그래픽: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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