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낮을 넘겼더라면 아마도…"
어제(9일) 저녁 7시쯤 배가 침몰한 뒤 오늘 오전 11시 해경에 구조되기까지 16시간가량 서해상에서 표류했던 어선 9신화호(69톤) 선장 이 모(49) 씨는 배가 침몰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녁 7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갑자기 배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이내 가라앉았습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모두가 튕겨나듯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다행히 정신을 잃은 사람이 없었고, 모두 부표(스티로폼)에 몸을 의지했습니다."
부표 하나가 병원 응급실 침대보다 조금 더 커 충분히 몸을 의지할 만했습니다.
8명 모두 무사했지만 선원들은 물살에 떠밀려 점점 사이가 멀어져 갔습니다.
이 선장은 선원들이 뿔뿔이 흩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모두 옆에 있는 부표를 끌어와 서로 붙들어 맬 것을 독촉했습니다.
이내 넓다른 스티로폼 뗏목 하나가 만들어졌고, 선원들은 그 위에서 물에 젖은 몸을 말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이내 한기가 뼛속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물도 없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뱃일을 하던 베트남 선원 등 외국인 선원들의 표정이 점점 겁에 질려가는 게 보였습니다.
이 선장은 '괜찮아'를 연발하며 이들을 안심시켰고, 손과 발을 문질러 몸에 열을 내도록 독려했습니다.
추위가 더 심해지자 선원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언 몸을 녹였습니다.
어떻게 밤을 새웠는지도 모르게 날이 밝았고, 한여름의 따가운 아침 햇살은 선원들의 몸을 조금씩 녹여줬습니다.
새벽녘에 언뜻 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선원들은 있는 힘껏,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넓은 바다에서 몇몇 사람의 소리지르는 것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선장은 그러나 "구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럿이 이렇게 모여 있다면 레이더에도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큰 부표를 만들어 오히려 작은 배로 오인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침몰하는 배에서 급히 탈출하느라 모두 아무 것도 몸에 지닌 것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장은 날이 밝자 스티로폼을 감싼 붉은 색 천을 찢으라고 명했고 이내 커다란 깃발 여럿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배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다시 악을 쓰듯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배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이 선장과 선원들의 마음속에는,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과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닐까 하는 절망감이 여러 번 교차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또 배 한 척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시 악을 썼지만 배는 방향을 틀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모두가 절망감에 넋을 놓을 찰나 배가 방향을 트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시 선원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살 수 있다는,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에 모두들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중국을 오가는 국제 여객선 리자오오리엔트 호(2만5천58톤)가 이들을 발견해 해경에 구조신호를 보냈고, 얼마 뒤 인근에서 고기를 잡는 우리 어선 여러 척이 몰려왔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온 순간이었습니다.
이 선장은 "바다에서 오랫동안 표류하다보니 오전 11시 해경에 구조될 때 헛소리를 하는 선원이 있었다"면서 "구조가 조금만 더 늦어져 오늘같이 뜨거운 날 햇볕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면 아마도…"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선원 8명은 오늘 오후 무사히 육지에 도착해 서산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기관장 정 모(63) 씨가 침몰 순간 선체에 부딪히면서 갈비뼈가 부러져 허리와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이들은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9신화호' 선원 8명 생사의 기로에서 16시간 표류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