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을 위해 열나흘 동안 격리된 채 환자를 돌본 대전 을지대학교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일기가 오늘(24일) 공개됐습니다.
을지대병원이 홍민정 중환자실(내과계) 수간호사의 일기 가운데 일부를 정리해 내놓은 이 기록에는 제한된 환경에서 환자를 돌보며 보름 가까이를 견뎌낸 간호사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을지대병원은 90번 환자(62·사망)가 병원을 찾은 9일부터 22일까지 코호트 격리됐습니다.
병원 측이 취재진에 제공한 홍민정 수간호사 일기 발췌본을 정리했습니다.
▲ 9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다. 그럴 줄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의 끈을 꽉 쥐고 있었지만, 설마 싶었다.
굳게 닫힌 문이 우리와 외부를 갈라놓았다.
급하게 근무자 수를 맞춰 '낮번 간호사'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에볼라 때 준비해둔 노란 방호복을 가져와 입었고,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온종일 땀에 젖어 붙어 있던 속옷은 몸을 감싼 모양 그대로 발갛게 부어올라 쓰라려 온다.
바깥공기가 살에 닿으니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동료 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붙잡고 울었다. 집에 있을 가족들 걱정에 멈출 수 없던 눈물은 비상상황을 알리는 벨 소리에 잠시 멈췄다.
▲ 10일
우리는 추가 지원자들과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급히 인원을 보충해가며 손발을 움직였다. 또 뜬눈으로 눈물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간호사라는 직업도 이 격리만 끝나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서 시간이 흘러 밖으로 나가고 싶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신혼 한 달 차인 ○○쌤, 결혼을 앞두고 웨딩촬영과 모든 것을 연기한 ○○쌤, 학교수업도 못 가는 ○○쌤,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던 ○○쌤,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며 담담하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펑펑 울던 ○○쌤….
늦은 시간까지 뒤엉켜 울며 우리는 하나가 됐다.
▲ 11일
오전 2시께 응급상황으로 수술이 필요했다.
환자처치와 자리이동, 수술을 위해 8번 소독 및 청소, 음압 유지 확인 후 수술, 끝난 후 또 열 번 가까이 소독을 했다.
그런 와중에 격리를 납득하지 못하고 나가겠다며 소란을 일으키던 한 환자분의 손에 맞아 ○○쌤의 고글이 움직이며 눈을 크게 다쳤다.
그 환자분은 평소 말수도 적었던 분이셨는데….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바깥공기조차 쐴 수 없게 하니 속상하신 마음은 이해됐다. 하지만 우리는 서글펐다.
▲ 16일
어제 연락드린 A씨 보호자가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긴 심호흡 소리에 이어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대신 마지막 편지를 읽어 달라'는 말에 막내 간호사가 놀란 눈치로 내게 알렸다.
'남편이 △△엄마에게 전합니다'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처음 이를 받아 적던 막내 선생님부터 울렸다.
을지대병원에 1997년에 입사해 14년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처음으로 내 부모님의 마지막을 보내듯이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내용이 중환자실 안을 가득 채우던 순간 우리는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 19일
박○○ 간호사의 생일이었다.
힘들어 지쳐 있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있던 ○○쌤은 왈칵 울었다.
밖에서 먹는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쌤의 모습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더 축하해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다독여주는 많은 사람이 있어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됐다. 우리가 건넨 축하인사를 우리가 받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 21일
"한밤만 자면 돼, 기다려 줄 수 있지?"
잔뜩 메인 목을 애써 삼키며 우리 아이를 달랬다.
"하루만 더 버티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을 전하시던 부장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나날 속에서 마지막이 보이기 시작하니 없던 힘이 생겨나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환자분들을 보며 문득 '우리가 가족을 만나러 간 사이에는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2주간의 격리 기간이 끝나 아무런 색안경 없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인데, 긴 시간 동안 가족들과 면회조차 금지되었던 환자분들에게 먼저 나가게 되어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버텨주신 것처럼 힘내서 다시 시작된 면회 날 누구보다 행복하시길 빈다.
(SBS 뉴미디어부)
'땀과 눈물'로 써내려 간 메르스 대응격리 간호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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