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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아들 팔아먹은 부모 오명 벗고 싶다"

"고등학생 아들이 계엄군에게 맞아 멍투성이로 돌아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어느 부모가 죽은 자식을 이용해 사기를 칠 수 있을까요."

김종석(1980년 사망 당시 16세·고1)군의 어머니 이계순(76)씨는 오늘(25일) "아들을 5·18 당시 계엄군에 희생됐다고 허위 신고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씨 가족은 죽기 전에 억울함을 풀고자 김정길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가족협의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씨 부부 주장과 사건 기록에 따르면 김 군은 1980년 5월 17일 강진농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광주의 친척집을 찾았다가 5일 만에 심하게 폭행당한 채 고향에 내려와 앓다가 같은 해 8월 20일 숨졌고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 사상자 추가신고'가 시작되자 뒤늦게 전남도청에 신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사이가 나빴던 주민으로부터 '이 씨가 병사한 중학생 아들을 5·18 관련자라고 허위신고해 보상금을 수령했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이 씨는 1993년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을, 남편 고 김문근 씨는 당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김 회장은 사건 기록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1993년 민원을 제기를 한 사람과 증인으로 진술한 주민들 모두 1980년 당시 종석 군 가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또 정작 중요한 1988년 5·18 사상자 신고 당시 보증을 선 이웃이나 이장, 공무원, 종석군의 학교 교사 등에 대해서는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확인했습니다.

김 회장은 "김 군의 중·고등학교 담임교사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김 군은 8km 길을 매일 자전거로 통학하고 축구부원으로 활동하던 건강한 학생이었고 생활기록부 기록도 동일했다"며 "경찰이 기본적인 내용 확인을 소홀히 하고 증인 머릿수 채우기에만 급급했다는 가족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이 씨 부부가 당국의 '광주민주화운동 사상자 추가신고' 방침에 따라 신고할 당시인 1988년 문공부가 '광주문제 치유대책' 발표를 했지만 발표문에 보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점, 또 보상법이 2년 뒤인 1990년에 마련된 점 등으로 미뤄 이 씨 부부가 보상을 목적으로 아들을 5·18 관련자로 조작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같은 여러 정황과 이 씨 부부의 주장 등을 근거로 사건 재조사 및 재심 청구를 할 계획입니다.

그는 "시간이 흘러 5·18에 대한 많은 진실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고 신군부의 진상 조작에 평생 고통받으며 명예라도 회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며 "이것이 5·18 보상 대상자에 대한 지속적인 재심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좋은 사례로 5·18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박문규(1980년 당시 18세)군과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이정근(69)씨를 위해 수년에 걸쳐 진실 규명 노력을 벌인 끝에 두 사람 모두 명예를 회복한 경우를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 및 피해자 심사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개정법률의 국회 통과를 위해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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