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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간 남의 이름으로 산 할머니 본명 되찾아

재혼한 남편의 부탁에 따라 사별한 전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50여년을 살아온 80대 할머니가 재판을 통해 자신의 본래 이름을 되찾게 됐다.

1958년 최달순(가명·여·86) 씨는 남편을 잃고 같은해 임 모 씨를 만나 재혼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자녀 세 명과 살고 있는 남자였다.

새 가정을 꾸리게 된 최씨는 임 씨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사별한 아내인 박순자(가명·여·사망 당시 나이 39)라는 이름으로 살아달라는 간청이었다.

아이들이 새엄마와 산다는 사실 때문에 바깥에서 손가락질 받을까 봐 염려된다고 임 씨는 말했다. 가족관계등록부 등 서류에 계모인 게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씨는 청을 받아들여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임 씨의 전처 이름인 박순자로 56년을 살았다. 대신 자신의 이름은 1960년 다른 사람에게 줬다.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여성 A씨로부터 호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정을 듣고 최달순으로 살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최근 최 씨는 자기 본명의 주민등록이 '사망직권말소'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름을 빌려준 여성 A씨가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주민등록이 없어진 것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온 최 씨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었다. 이에 거주지역인 등촌3동 동사무소에 찾아가 주민등록 재등록 등을 요청했지만 "주민등록 사망 말소자에 대해서는 재등록이 안된다"는 처분을 받자 소송을 냈다.

28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최규홍 부장판사)는 최 씨가 동사무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처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은 "최 씨는 가족관계등록부상 박순자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라며 "실제 등록부상에서 가리키는 사람이 (사망한) 박 씨가 아니라 최 씨임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동사무소 측은 1962년 주민등록법 제정 뒤 최달순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한 사람이 A씨이기 때문에 최 씨에게는 해당 주민등록의 재등록을 신청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이는 제3자가 최달순의 주민등록을 도용하면서 자신의 지문을 등록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피고는 최 씨의 지문을 새로 등록해 주민등록증 발급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심도 이런 1심의 판결을 인용해 동사무소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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