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교황집전 광화문 시복식 메시지, 신앙·화해·용기"

오는 8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황 프란치스코의 집전으로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의 시복미사가 열린다.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되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시복,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복은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된 무고한 순교자들의 숭고한 행위가 헛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음을 선포하고 오해받은 역사를 바로잡는 겁니다.

순교자들이 박해자를 증오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은 정신을 살려 유교와 천주교가 화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000년 시복 청원인에 임명돼 줄곧 실무 총책임자로 일해 온 한국천주교 주교회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57) 신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류 신부는 지난 24일 주교회의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다.

오히려 박해를 고통스런 죽음이 아니라 신앙의 완성 단계로 보내준다고 생각했기에 일말의 증오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신자들 누구나 공경하고 신앙의 본보기인 복자로 추대하는 시복은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처음 시작부터 보통 20년이 걸린다.

지역교회 준비 작업이 10년, 교황청 심사가 10년이다.

124위의 경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기간이 크게 단축됐다.

교황청 시성성 심사가 5년 만에 끝났다.

성덕 심사와 기적 심사를 거치는데 순교자는 죽음 자체를 기적으로 봐서 기적 심사를 생략한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의 대표 순교자는 전라도의 유명한 양반 가문 출신인 윤지충(1759∼1791)이다.

유교식 제사를 거부했다가 한국천주교에서 최초로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육신의 부모보다 더 높은 부모, 임금보더 더 높은 임금인 하느님을 섬기기 때문에 그의 명을 거절할 수 없다"고 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군대부'(大君大父)다.

류 신부는 "당시에는 제사 문제로 논쟁이 붙었다.

실학사상의 배경이 된 유교 제사의 조상신 숭배, 허례허식 논란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은 살아 계실 때 잘하는 게 도리이지 돌아가시고서 아무리 성대하게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 신부는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한국천주교 평신도 교부'로 불리는 정약종, 천민 출신으로 천주교의 평등사상을 지상의 유토피아로 여겼던 황일광, 수도자 생활을 꿈꾸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동정부부였던 유중철·이순이를 대표적 순교자로 꼽았다.

최초로 한국에 파견된 가톨릭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왕족들에까지 복음을 전했던 강완숙도 이번에 시복된다.

주문모 신부는 박해를 피해 고국으로 피신하다 "순교로써 신자들의 죽음을 막겠다"며 황해도에서 자수했다.

한국천주교의 순교자는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 등 103위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됐다.

이벽 요한 세례자 등 133위와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등 81위, 한국인 2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시복 작업도 진행 중이다.

시복식 장소를 서울 도심에서도 한복판인 광화문으로 정한 것을 두고 천주교 안팎에서 논란이 있다.

천주교가 공식 초청한 인원만 20만 명이며, 실제 참석 인원은 50만에서 최대 100만 명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장소 논란의 쟁점은 천주교가 과연 한국 종교와 사회 전체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 소박하고 검소한 교황의 뜻을 존중했는가, 경호와 안전 문제, 행사와 상관없는 시민들의 불편을 감안했는가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보여주기 행사 아니냐는 거다.

천주교 안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장소 결정에만 석 달이 걸렸다고 류 신부는 전했다.

"광화문을 결정한 건 역사적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배어 있는 형조와 우포도청, 의금부 터 등이 근처에 있고 서소문 순교성지도 가깝습니다.

광화문은 바티칸의 시복식 장소인 베드로대성당 앞 '화해의 거리'와 구조가 비슷하다는 의미도 있고요." 류 신부는 "잠실체육관 같은 곳도 검토했지만 교황이 집전하시는데 좀 그렇지 않느냐 하는 목소리도 솔직히 있었다"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도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러 논란과 어려움에도 광화문 시복식이 성사된 데는 자신의 안전에 신경 쓰기보다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교황의 스타일도 작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순교라는 단어는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규정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순교는 올바른 일과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주는 일입니다. 순교자는 자기를 죽인 사람조차 증오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비굴해지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 이해관계와 사상의 차이를 초월해 화해의 정신을 회복하는 게 순교가 주는 가르침 아닐까요?"

성당이든 교회든 갈수록 부유층, 식자층 중심으로 돌아가고 돈을 중시하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순교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곧 한국을 찾는 교황 프란치스코도 끊임없이 가난한 교회를 강조한다.

류 신부는 "부자들이라고 해서 신앙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공동선을 위해 물질을 어떻게 쓸지가 중요하다"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다 간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물질문명에 빠져드는 우리를 경계하고 반성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