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에서는 최대한 많은 만남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공식 일정만 10개, 아베 총리를 비롯해 나카소네 전 총리, 아소 타로 전 총리(현 부총리),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등 전직 총리 3명, 게다가 연립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대표도 예방했습니다.
이밖에 일한협력위 관계자들, 누카가 후쿠시로 전 방위성 장관 등 일본 정치인 1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여기에 신문 방송 등 12개 일본 주요 미디어 관계자들과도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오코노기 마사오 큐슈대학 교수 등 학계 인사들, 또 아소 유타카 일한 경제협력협회 부회장(아소 타로 전 총리의 친동생) 등 일본 경제인들과 간담회가 이어졌습니다.
많은 발언이 오갔지만 일본 측에서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아베 총리 면담 부분은 강력히 오프를 요구해 이를 수용하기로 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자를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칼럼에 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일본인들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만나는 사람 마다 한결 같이 최근의 한일 관계에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오랫 동안 한일관계를 다뤄온 인사들은 역대 가장 안 좋은 시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일은 이런 상태가 쉽게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만난 인사들이 대부분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지식인 계층은 현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 한일 관계가 중요한가? 이들의 논리는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고,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두 나라는 1,500년 전 부터 왕래했다면서 일본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때로는 비꺽거리더라도 전반적으로 발전돼 왔다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한일협정 발효 50주년,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인 내년을 앞두고 도무지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인식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서로의 인식이 갈립니다. 일본 측은 나름대로 노력했는 데 이를 한국이 알아주지 않고 무조건 계속 사과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 측은 진정한 사과나 배상이 없는 데다 자꾸 뒤통수를 치는 행위를 일본 측이 반복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금 한일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6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집단자위권 문제, 북일 관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독도, 역사 문제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 하나하나 양국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방일 기회는 이런 갈등을 부각시키고 누가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기 보다 일단 서로 공통 부분을 찾아보자는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물론 서로 인식의 차이가 노정됐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한일 어느 쪽도 자기 주장을 굽힐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일본 측에서는 그렇더라도 가능한 한 갈등을 피해 보자는 것, 서로 '틀림'을 주장하기 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일 관계가 정상화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갈등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양국의 언론들이 갈등만 부각시키면서 양국 국민들 감정이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혐한' 감정도 상당 부분은 이에 편승한 언론, 출판이 부채질한 점도 있다는 사실은 일본 측도 인정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주요 언론사에서는 이에 편승할 의사는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고 있다는 데에는 일본 측 인사들이 대부분 공감했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이를 일본 젊은이들의 일종의 좌절로 풀이했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일본 젊은이들이 자신을 잃고, 반면 그 사이 엄청나게 성장한 한국을 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혐한 시위' 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양식 있는 일본인들은 이를 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증오 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도가 지나친 행위에 대해서는 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오는 등 일본 사회가 그냥 손만 놓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해당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상황입니다.
경제인들은 더 절박했습니다. 한일 간 협력 사업이 많은 데 지금 처럼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 예컨대 삼성전자 갤럭시 폰에는 50% 이상 일본 부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즉 갤럭시 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일본 회사들의 수익도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과거 한일 간 경제 관계가 수직적 분업 관계였다면 지금은 수평적 분업 관계로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참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한일 양국의 경제인들이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우리로서는 과거 2차대전 당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악몽이 떠오르기도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본 측은 이런 얘기 까지 하더군요. "자꾸 한국이 미,중,일,러 4강 사이에 끼어 있다고 표현 하지 마라, 일본은 4강이 아니다, 오히려 3강 사이에 한국과 일본이 끼어 있다고 하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배려는 각별했습니다. 이틀째 16일이 바로 세월호 참사 발생 석달 되는 날이었는 데 행사 직전 모두가 일어나 묵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간에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오가야 관계 정상화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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