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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한달…좌절·분노·통곡의 30일

세월호 침몰 한달…좌절·분노·통곡의 30일
6천825t급, 길이 145m·폭 22m,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80대·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 동시 적재 가능.

국내 최대 규모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오늘(15일)로 한 달째가 됐습니다.

"여기 배인데 여기 배가 침몰하는 거 같아요."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119로 전화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최덕하 군의 다급한 목소리로 세월호의 침몰은 처음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승무원 33명, 일반 승객 104명 등 476명(잠정)이 타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전날인 15일 오후 6시 30분 제주를 향해 인천항을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안개 때문에 2시간 30분가량 늦게 출항했습니다.

당일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려던 모든 여객선이 결항했지만 세월호만 불길한 전조를 무시했습니다.

16일 오전 9시 30분 목포해경 123함(110t급)을 시작으로 해경과 해군의 경비정, 헬기, 해난구조대(SSU)·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등 최정예 인력·장비가 총출동했다는 소식에 국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차분히 구조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모두 구조되리라 믿고 눈과 귀를 기울였던 뉴스는 결과적으로 304명의 사망·실종 실황을 중계한 꼴이 됐습니다.

구조된 인원은 172명이 전부였습니다.

해경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속옷 차림의 이준석(69)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을 구조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믿고 기다리던 승객들을 위한 선내 진입은 없었습니다.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보낸 마지막 신호가 된 학생의 카카오톡 메시지입니다.

"기다리래. 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 "해경이 왔어. 언론에 속보도 떴어" 등의 메시지 내용으로 미뤄 승객들은 침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선내 방송만을 믿고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기는 등 '살신성인'한 선박 매니저 박지영(22·여)씨는 마지막 메시지가 발신된 뒤 한 시간여만인 오전 11시 18분 첫번째 사망자로 발견됐습니다.

이틀째인 17일 해경, 해군, 관공서, 민간 선박·헬기와 잠수사들은 수중, 수상, 공중에서 입체 수색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사고 해역은 수중에 펄이 많고 조류가 강해 선내 수색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물살이 약한 '소조기', 강한 '대조기', 물의 흐름이 멈추는 '정조시간' 등 생소했던 용어들이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같은날 이준석 선장은 피의자로 전환돼 수사를 받았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도 구성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이 모여있는 진도 체육관을 찾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과가 빠진 위로에 대통령은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에 부닥치기도 했습니다.

선수만 겨우 물밖으로 내놓고 있던 세월호는 18일 완전히 침몰했습니다.

인솔 책임자로 세월호에 올라탔다가 구조된 강민규(52) 단원고 교감은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침몰 나흘째인 19일 밤 선체 유리창을 깨고 처음으로 선내에 진입,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이후 구조·수색작업은 선내 공기층인 '에어포켓'에 걸었던 기대를 허망하게 깨뜨렸습니다.

날이 갈수록 수습된 시신만 늘어갔고 실종자의 생환 소식은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자치단체 등이 준비한 축제는 대부분 연기·취소됐으며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선거운동도 중단됐습니다.

경기도 안산,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는 수만~수십만여명에 이르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27일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과 좌절로 가득했던 4월을 지나 5월을 맞았습니다.

꼬리를 무는 의혹과 불신은 절망감을 분노로 바꿔놓았습니다.

승무원들의 비정한 행태, 청해진해운과 그 주변 업체들의 허술한 선박관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경영비리 의혹, 무능함도 모자라 선장을 해양경찰관의 집에 재우고 언딘과 유착 의혹에까지 휩싸인 해경, '해피아'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은 해양수산부 등 '비정상'의 징후가 잇따라 드러났습니다.

17일째인 5월 2일에는 침몰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2㎞가량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수습됐습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시신 유실에 대비해 수상 수색 범위를 넓혔습니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낀 3~6일 연휴에도 "시신이라도 찾아달라"는 실종자 가족의 통곡은 팽목항을 덮었습니다.

4일 두 번째로 진도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실종자 가족은

"지금 가서 보세요. 형체도 못 봐요. 형체가 없어졌어요. 부모로서 형체도 못 알아본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애국하러 가겠다"며 진도를 찾아 수색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이광욱(53)씨는 6일 숨졌습니다.

같은날 대책본부는 선내 111개 공간 중 승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 64개 객실 문을 모두 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곧이어 찾아온 어버이날에도 빨간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이 팽목항을 감쌌습니다.

기상 악화와 선체 내부 칸막이 약화 현상 등으로 수색작업은 10일 오전부터 사흘간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최덕하(첫 신고자)군, 박지영(첫 사망자)·강민규(교감)·이광욱(잠수사) 씨 등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는 의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의 부름에 검찰과 법원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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