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세 번째로 혼잡한 공항으로 알려진 LA 국제공항에서는 반나절 동안 공항 운영이 뒤죽박죽 됐습니다. 여객기 27편이 착륙하지 못하고 다른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고 212편의 항공편이 연착했습니다. 출발하는 항공편도 21편은 아예 이륙을 취소했고 216편이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습니다.
사건 이틀 뒤 미국의 NBC 방송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U2 정찰기 때문이라는 보도를 했습니다. 항공 당국에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며칠을 버텼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사실이라고 시인했습니다. 개발된 지 60년도 더 된 U2기라는 정찰기 때문에 갑자기 공항의 관제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켰다는 겁니다.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항공 교통 통제 센터에서는 로스앤젤레스는 물론 샌디에이고 국제공항, 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을 비롯한 미국 남서부 지역 주요 공항의 항공기 이착륙을 통제하는 곳입니다. 이 센터에 설치된 항공 교통 관제 시스템은 항공기끼리 공중에서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고도를 감시하고 필요하면 고도를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센터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에드워즈 공군 기지에서 발진한 U2 정찰기를 이 센터의 관제용 레이더가 포착했고 다른 민항기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U2기의 고도와 속도를 계산하다 과부하가 걸려 결국 작동을 멈췄다는 겁니다. 결국 예비 컴퓨터까지 멈추자 항공 사고 발생을 우려한 당국이 비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CNN의 교통문제 전문 기자는 이번 상황을 두고 워낙 높은 고도를 날기 때문에 민항기와는 애초에 충돌할 가능성이 없는 U2 정찰기에 대해 왜 민항기를 담당하는 항공교통관제센터의 컴퓨터가 고도와 속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U2기는 냉전 시기인 1950년대에 개발된 고고도 정찰기입니다. 소련 영공에 들어가 정찰 활동을 하다 격추된 적도 있는 미소 냉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종입니다. 한반도에서도 북한에 대한 정찰 활동에 투입됐고 지금도 주한미군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U2 정찰기의 기술적인 강점은 고도입니다. 최고 상승 고도가 무려 27킬로미터나 됩니다. 통상적인 작전 고도도 21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이에 반해서 일반 민항기의 고도는 10킬로미터 안팎입니다. 거의 두 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민항기와 U2 정찰기가 충돌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민항기 관제 컴퓨터가 U2기와 민항기의 충돌을 막겠다고 나섰던 겁니다.
그런데 진짜 의문은 이겁니다. 기껏해야 정찰기 한 대가 나타났는데 최첨단 관제 컴퓨터가 그것의 고도와 속도를 계산하느라 다운이 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유일하게 나온 설명은 당시 이 U2 정찰기가 훈련을 위해 고도를 여러 차례 바꾸고 비행 경로도 지그재그로 날았다는 것입니다. 추론해 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가 뛰어들었고 예기치 못한 경로로 고도까지 수시로 바꿔가며 날아가니 컴퓨터로서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계산을 하게 된 것이겠죠. 아주 단순한 계산이라도 반복적으로 작업하게 만들면 서버급 컴퓨터도 먹통을 만들 수가 있다는 걸 우리는 여러 차례의 디도스 공격 사건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특정 사이트에 대용량으로 집중적인 접속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사이트의 서버를 멈춰서게 만드는 거죠. U2 정찰기가 일부러 공격한 것은 아니지만 나타난 결과는 비슷한 겁니다.
당국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관제 컴퓨터에 미리 입력해 놓은 비행 금지 구역이나 경로 등에 이 U2 정찰기가 뛰어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가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충돌 가능성은 없지만 관제 컴퓨터는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충돌 방지를 위한 고도와 속도 계산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CNN에 따르면 만약 똑같은 루트로 U2 정찰기가 또 비행을 하게 된다면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연방항공청이 긴급 조치를 했는데, 그게 관제 컴퓨터의 메모리 용량을 늘려서 같은 계산을 하더라도 다운되지는 않도록 한 거랍니다.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서는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좀 허술해 보입니다. 물론 임시 대처를 해놓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럼 국내 공항은 이런 문제에서 안전할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반도에서도 주한 미군이 U2 정찰기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U2 말고도 무인 고고도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도 종종 날아다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국내에서는 민항기와 군용기를 통합 관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있어난 적이 있습니다. 1999년에 있었던 일인데, 주한 미군 소속 전투기가 인천 근처에서 여객기가 날고 있는 공역을 침범해서 여객기 사이를 날아간 겁니다. 당시 외교부에서 미국 측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가끔이긴 하지만 유사한 일이 생긴다더군요. 정해진 항로를 준수하는 민항기와 달리 전투기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기동하다보니 민항기 항로를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2011년에는 민항기를 해안을 지키는 초병이 적기(?)로 오인해서 사격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물론 민항기가 워낙 멀리 있었기 때문에 사격을 받은 아시아나 항공 소속 여객기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격을 소총으로 했으니 망정이지 정말 대공화기를 사용했더라면 큰일이 났겠죠.
직접적인 군사 위협으로부터는 자유로운 미국 본토에서 공군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걸 생각해보면 우리처럼 좁은 하늘을 민항기와 군용기가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 보면 우리 정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잘 분석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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