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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그리스가 돌아왔다"

[논설위원칼럼] "그리스가 돌아왔다"
'그리스가 채권 시장에 돌아왔다' 4월 1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국제면의 제목입니다. 그리스가 2010년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막힌 채권 발행이 4년 만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리스는 5년 만기물 30억 유로의 채권을 성공적으로 발행했습니다. 금리도 5% 이하로 낮췄습니다.

일단 채권 발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상당히 고무됐습니다. 공공부채관리청(PDMA)의 파파도풀러스 청장은 "이번 채권 발행은 단지 첫 단계일 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스가 구제 금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바로 다음 날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를 방문했습니다.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면서 가장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 나라가 독일이었습니다. 이번 메르켈 총리의 방문 기간 중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 도심의 지하철 역을 폐쇄하고, 집회를 금지하는 등 상엄한 경비를 펼쳤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에게 메르켈 총리는 자국에 고통을 강요한 트로이카(EU, IMF, ECB)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로 각인돼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도 그리스의 채권 시장 복귀가 국제 채권 시장에서 '새롭게 형성된 신뢰'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스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2010년 부터 트로이카를 통해 2,400억 유로를 지원받았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구조조정을 강요받았습니다. 정리해고와 연금 삭감, 증세가 이어졌고, 공항 까지 팔아치우는 등 살벌할 정도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한 끝에 이제야 비로소 어둠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번 국채 발행은 구제 금융에 의존하지 않고 나라 빚을 스스로 갚을 수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2,400억 유로라는 엄청난 액수를 상환하기에는 아직도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부채 일부를 탕감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트로이카의 최대 주주 격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탕감은 없다"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 국민들이 더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최근의 지표는 조금씩이나마 희망이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6년간 계속된 마이너스 성장이 올해는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해 -3.7% 성장에서 올해는 0.6% 성장이 예상됩니다.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던 경상수지 적자도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2008년 347억 유로 적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 데, 2012년 46억 유로 적자로 줄였고, 2013년에는 12억 유로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추락하기만 하던 국가 신용등급도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지난 달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B-로 유지했습니다. 투자적격 등급 한 단계 아래입니다. 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수출이 성장세를 보이고, 개혁 정책으로 재정이 확충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S&P는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현실은 엄혹합니다. 실업률이 27.5%, 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난 9일에도 메르켈 총리의 방문에 앞서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계의 불만도 높습니다. 여기에 고질적인 정치 불안도 악재입니다. 연정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5월 유럽의회 선거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국채 발행에 대해서도 야당은 선거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S&P도 정치를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2차 구조조정이 끝나도 구제 금융 부족분이 100억 유로 이상인 것으로 평가돼 3차 구조조정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추가 긴축정책은 안된다고 버티고 있지만 채권단은 3차 구조조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리스가 보여준 행보는 대외적인 신뢰를 얻었습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의 모임인 유로그룹은 4월 1일자 성명에서 2차 구조조정의 성과를 환영했습니다. 특히 그리스 국민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런 구조조정이 건전한 투자환경과 취업기회를 창출해 냄으로써 그리스 경제의 잠재적 성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아일랜드가 올 초 트로이카 체제를 졸업했고, 이제 키프러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 그리스가 유럽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로 기록됐습니다. 그런 그리스도 조금씩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시발이 이번 국채 발행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경제가 회복되면 국채 발행 액수는 늘고, 이율은 더 떨어질 것입니다.

97년 혹독한 IMF 체제를 겪은 우리로서는 남의 일 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유럽이 오랜 침체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 경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정치가 불안 요소가 되면 안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그리스를 보면서 자꾸 우리 경제가 오버랩되는 것은 서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마지막으로 IMF의 새로운 방침입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 구제 금융을 받은 국가에 대해 더 이상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4월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IMF/IBRD 춘계 총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 포비아'라고 표현될 정도의 개입에 대해 "구조조정? 그 얘기는 내 전임 시절 얘기다. 나는 그것이 뭔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이상 구조조정을 안 할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또다시 구제 금융을 받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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