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았던 핵심정책이 LTV, DTI 규제다. LTV 규제는 집값의 일정비율만 대출을 허용한 것이고, DTI 규제는 대출 원금이 연간소득의 일정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LTV, DTI 규제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기재부 1차관은 "가계부채 속도관리를 위해 LTV, DTI 규제에 대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관리'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듣기에 따라 LTV, DTI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부동산 규제의 마지막 대못이 뽑혔다'며 곧바로 부동산 시장이 술렁거렸다. 주택시장에 훈풍이 불 거라는 성급한 예측 기사도 등장했다. 분위기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튿날 금융당국의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임대차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하며 진화에 나섰다. 신 위원장은 "가계부채 억제와 금융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LTV, DTI 규제는 현행을 유지하겠다"고 못 박았다. 하루 만에 정부 사이드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자 주택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게 뭐 하는 거냐"라며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락가락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도 정부 당국자는 자화자찬격 평가를 내려 또 한 번 빈축을 샀다. 현오석 부총리는 G20 회의 참석 당시를 거론하며 세계가 우리의 경제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내용 뿐만 아니라 시기에서도 매우 적절했다고 스스로 추켜 세웠다. 청와대와 기재부가 엇박자를 보였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재부와 청와대가 가진 정보가 다르므로 이들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소통"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을 늘어 놓기도 했다.
정부는 3개년 계획을 발표하기 전인 지난주 수요일, 60여쪽 짜리 요약본을 배포하며 300쪽에 달하는 상세본을 금요일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서 너 차례 배포를 미루더니 급기야 대통령 담화 발표 전에 자료를 낼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었다. 3년 대계인 경제혁신 정책을 보도하면서 원본(상세본) 한번 보지 못하고 기사를 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요약본과 대통령 담화문, 이후에 나온 참고자료, 보지도 못한 상세본을 토대로 기사를 쓰다보니 오보 소동이 날 법도 하다. 기자 생활 20년 차에 경험한 뜻 밖의 난맥상.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구상을 취임 1주년에 맞춰 정책으로 급조하려다 보니 정부가 혼란을 자초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자에게 보도자료 배포 약속을 어긴 건 넘어갈 수 있지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담긴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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