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는 불교적인 의미 뿐 아니라, 문화재적인 의미도 크다. 대웅전, 국사전은 국보로, 약사전과 영산전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그런데, 보물 제302호, 제303호로 나란히 지정된 약사전과 영산전에서 훼손 사례가 발견되었다.
약사전과 영산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약사전은 정면과 측면이 1칸인 건물로, 현존하는 불전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꼽힌다. 영산전은 내부에 그려진 탱화로 유명하다. 이 건물들에는 원래 문 아랫부분에 삼태극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흰색과 붉은색, 파란색이 어우러진 태극무늬였다. ‘천, 지, 인’ 도교의 상징이 사찰에 사용되어 한국 불교건축의 특수성을 보여주었다.
1933년 일본이 한국의 문화재를 조사해 펴낸 ‘조선고적도보’, 문화재 지정 이후인 1968년 정부가 발간한 ‘문화재대관’에도 태극무늬는 분명히 나타나 있다.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의 고건축’에서도 사진을 통해 태극무늬가 분명 눈에 띈다. 함께 게재된 실측도에도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은 송광사를 가도, 이 태극무늬를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일까?
이 모습을 처음 발견한 건 삼태극 연구자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였다. 삼태극을 찾아 조사를 다니던 중이던 2006년, 송광사 답사를 하다가 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자료 조사를 통해 약사전과 영산전의 태극무늬를 확인하고 실제로 조사하려고 했는데, 그 태극무늬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문화재청 담당자에게 물었다. 1997~8년에 약사전과 영산전 보수 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붕과 기와, 단청 보수 공사가 이뤄졌었다. 담당자는 당시 공사 기록을 찾았다. 설계도, 도면, 보수 수리 내역이 다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단청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의 보존 기본원칙은 바로 ‘원형유지’이다. 만약 현상 변경이 생길 경우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기록 그 어디에도 ‘자문’을 받았다던지, ‘심의’를 거쳤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임의적으로 단청을 바꾸어버렸다는 증거인 셈이다.
담당자도 당황스러워 했다. 당시에는 ‘청’ 단위의 ‘문화재청’이 아니라 문화부에 소속된 ‘문화재관리국’ 정도였던 데다, 건조물 문화재이기 때문에 구조와 설계에만 신경을 썼지 단청은 소홀히 했던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만 치중하고, 나머지는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행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런 의식들이 최근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문화재 훼손 논란의 발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라도 밝힐 건 밝히고,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