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늦은 오후 시간 서울 도심 곳곳에선 택배기사들이 도로에 차를 세우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길게 통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명절과 새 학기가 지난 5월부터 휴가철인 8월까진 택배 업체의 비수기입니다. 배송이 줄면서 오후 3~4시면 하루치 물량을 다 처리합니다. 하지만,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퇴근하는 기사는 없습니다.
문제는 택배 기사가 편의점에 3상자 이상 물품을 남길 때 터집니다. 이런 '사고'가 생기면, CJ대한통운 각 지점은 즉시 퀵서비스를 부릅니다. 퀵서비스로 지역별 화물 터미널까지 회수하는 겁니다. 그리곤 물건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때 퀵서비스에 나간 돈은 100% 택배기사에게 부과됩니다. 기사들은 이 벌금이 무서워 하루 평균 1~2시간을 허송한다고 하소연합니다.
편의점 택배 한 상자를 배송하고 기사가 가져가는 돈은 얼마일까요? 고작 100원 수준입니다. 현재 750원 수준인 일반택배 수수료에 비하면 세 발의 피도 안 됩니다. 택배차량 유류비와 전화통화료, 소모품비 등 유지비는 모두 기사가 부담하니까, 실제 수익은 100원이 채 안 되는 겁니다. 기사 1명이 편의점 3곳을 할당받았다면, 그가 편의점 택배를 나르고 하루에 버는 돈은 2천 원 남짓입니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퇴근이라도 일찍 하는 날엔 벌 수 있는 돈의 수십 배가 날아갑니다. 한 택배기사는 “예전처럼 일찍 퇴근해 쉬는 게 낫지, 시간은 낭비하고 돈 떼일 위험이 큰 편의점 택배를 할당하는 본사 행태가 너무 불합리하다”고 말했습니다.
편의점은 택배 배송비의 3~5%를 수수료로 받고, 택배 부치러 오는 소비자가 다른 물건을 사가는 일종의 부수효과도 봅니다.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 택배사가 익일배송을 무조건 보장한다고 계약을 맺기 때문에 손해 볼 염려도 없습니다. 반면, 택배사는 갈수록 확장하는 편의점 시장까지 택배시장을 개척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편의점과 택배 업체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입니다.
편의점과 택배회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익일 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편의점은 택배사와 계약이 그렇다고 하고, 택배 회사는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해선 편의점 영업을 할당받은 택배기사가 회수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나머지,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가 남습니다. 그들은 편의점을 할당받아 수수료를 받는 현재 배송체계가 상당 부분 부조리하다고 말합니다. 편의점 택배 배송은 ‘되도록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아예 안 하고 싶다’는 게 대부분 기사의 말입니다. 지난 4일부터 운송거부에 돌입한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편의점 택배 물품 회수시간을 오후 3시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CJ대한통운은 이런 요구에 대해 지난 9일 ‘금전적인 벌칙 제도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취재결과 편의점 택배에 부과되는 퀵서비스 벌금 규정은 여전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270대에 불과하던 CJ택배 운송거부 차량이 1천 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새, 인천에서 시작된 파업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양새입니다. CJ대한통운은 매일 기사들에게 문자를 보내 파업 이탈을 막고, 수익 확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 맡긴 택배 물품은 오늘도 아무 탈 없이, 이틀 만에 배송지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할당과 퀵서비스 비용이 무서워 묵묵히 발품을 파는 택배기사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불안한 총알 배송은 그러나, 회사 측의 약속이 공염불로 그칠 땐 언제든 멈춰버릴 수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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